
지난 9월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의 강의가 유튜브에 실시간 스트리밍 된 뒤 여전히 화제가 되고 있다. 세계인의 학구열 때문이 아니라 강의에서 방탄소년단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의실 스크린에 ‘45 millions, 24 hours’를 띄워 놓고 의미를 물었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 ‘아이돌’이 하루 24시간 동안 거둔 유튜브 조회 수이다. 한 학생이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같다고 말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교수는 “여러분 대부분이 이 그룹을 모른다니 충격이다. 스스로 멀티 컬처 세계 시민, 교양인이라고 생각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일하고 싶다면 이 밴드를 알아야 한다”며 “이것이 아시안 쿨, 새로운 쿨”이라고 했다.
전 세계 문화계, 특히 미국 시장에서 멋진 아시아, ‘아시안 쿨’이 급부상하고 있다. 아시아계 배우만으로 제작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큰 성공은 그 대표 사례다. 이어 아시아인을 다룬 드라마, 영화들이 줄이어 제작될 예정이다. 최근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 드라마 판권이 팔려나간 것도 ‘아시안 쿨’ 자장 안에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아시안 쿨’의 의미는 2000년대 초 일본 정부가 주도한 ‘쿨 재팬’과 비교할 때 분명히 드러난다. 특정 정부 주도, 관 주도 또는 생산자 중심의 전략이 아니라 경제력을 갖춘 아시아계 소비자가 만든 소비자 중심의 강력한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안 쿨을 말할 때 가장 주목받는 것이 바로 한국이다. 경제적으로는 중국, 기존 문화 파워로는 일본에 뒤지지만, 한국은 중국보다 문화 콘텐츠에서 앞서고 일본보다 새롭다고 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문화 시장에서, 한국이 중국·일본과 달리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장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K-팝은 아시안 쿨을 폭발시킬 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시안 쿨’의 연장선상에서 ‘코리안 쿨’이 가능해진 것이다.
보다 의미 있는 것은 ‘코리안 쿨’이 한국 문화가 이제까지 한 번도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앨범이 몇 장 팔리고, 책이 얼마나 팔렸냐를 넘어 동시대인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졌듯이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뛰어난 노래와 퍼포먼스뿐 아니라 그들이 처한 학교, 사회, 가족 문제를 거쳐 도달한 ‘자신을 사랑하라’는 가치에 기인하고 있다. 이들뿐 아니다. 지난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만난 한 외국 편집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정유정의 ‘7년의 밤’ 등을 예로 들며 한국은 테크놀로지가 고도로 발달했지만, 사회적 억압과 압력이 높은 곳으로 이질적인 두 요소가 결합해 이 시대 삶에 대한 새로운 답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각자도생, 성공주의, 정글 같은 한국 사회에서 몸부림치며 도달한 문화적 결론이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답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코리안 쿨’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이를 ‘세계 최고’로 해석해 그저 ‘국뽕’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보여주는 우리를 돌아보며 더 나은 곳으로 가보려 시도하는 것, 그것이 코리안 쿨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메시지일 것이다.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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