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남대총에서 나온 마랑명 칠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황남대총에서 나온 마랑명 칠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소형 자갈. 바둑돌로 추정된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소형 자갈. 바둑돌로 추정된다.
‘중앙고고연구’ 논문서 밝혀
고분 발굴 43년만에 실체 풀어
4세기 신라에 바둑 전래 확인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1975년 출토한 칠기에 적힌 명문인 ‘마랑’(馬朗)의 실체를 밝혀주는 연구 결과가 고분 발굴 43년 만에 나왔다. 신라고고학을 전공한 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과 정일 목포대 중국언어와문화학과 교수는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학술지 ‘중앙고고연구’에 게재한 논문에서 “마랑은 3∼4세기대 중국 서진(西晉·266∼316) 시기에 활약한 바둑 최고수로 바둑 성인인 ‘기성’(棋聖)이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라고 밝혔다.

논문은 “5세기 초중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고분에서 중국 기성 이름을 적은 칠기가 나온 점으로 미뤄 서진 바둑문화가 4세기 무렵 신라왕조에 전해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강조했다.

마랑에 대한 단서는 중국 사상가 갈홍(葛洪·284∼363)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의 “마랑은 자가 수명(綏明)이며, 바둑 기술에서 적수가 없으니 기성(棋聖)이라는 칭호가 있다”(馬朗,字綏明,圍棋藝無敵,有棋聖之稱)에서 잡혔다.

마수명, 즉 마랑이 기성이었다는 사실은 다른 문헌에서도 확인됐다. 논문은 “송나라 학자인 정초(鄭樵·1104∼1162)가 펴낸 ‘통지’(通志)에 나오는 “원강(元康) 연간(291∼299)에 조왕 (사마)륜의 사인(舍人·개인 저택 관리인)인 마랑이 ‘위기세’(圍棋勢) 29권을 편찬했다”는 대목을 소개하며 “조왕 사마륜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301년에 죽었고, 그를 따른 많은 사람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마랑도 이때 반역에 연루돼 주살되고 바둑 전문서 위기세도 소실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함께 논문은 지름 9㎝, 높이 4㎝인 이 칠기의 용도를 ‘바둑돌을 넣는 통’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소형 자갈 243개는 마랑명 칠기가 바둑돌을 담는 통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편 논문에서 두 연구자는 “지금까지는 학계에서 신라가 백제만큼 중국과 통교하지 않았고, 주로 북방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봤다”며 “마랑명 칠기를 통해 신라가 남쪽 해로로도 중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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