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지난 6월 28일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대체복무제 도입이 불가피해졌고, 11월 1일 대법원 판결에 의해 ‘양심적 병역 거부’가 현역 입영을 거부하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됐다. 앞으로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경우 병역 기피자로 처벌받지 않게 된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로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겠지만, 이 판결의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

국민은 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병역 거부가 양심적이라면 현역 복무는 비양심적이냐는 반문도 적지 않다. 이는 용어의 문제일 수 있다. 헌법 제16조 ‘양심의 자유’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양심’에 부합하는 행동을 할 자유를 뜻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소신을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고, 이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받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 그래서 ‘양심적 병역 거부’ 대신 ‘개인의 소신에 따른 병역 거부’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수 있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곧 도덕적 정당성과 동일시될 수는 없으므로 헌법상 양심에 따른 행동이 무조건 보호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 소신이 다른 사람의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심범 또는 양심적 납세 거부 등과는 달리 양심적 병역 거부가 특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대체복무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를 인정함으로써 현역 복무자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 사이의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의 중요한 전제인 것이다.

만일 양심을 근거로 병역을 면제받을 뿐만 아니라, 대체복무조차 없을 때는 현역 복무를 하는 국민이 이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며, 나아가 제대로 현역 복무를 하려는 사람이 심하게 줄어 병역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우려도 매우 커질 것이다. 반면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대체복무를 통해 현역 복무 이상의 부담을 지게 된다면, 다른 국민도 이를 납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제5조에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대체복무 없는 상태에서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대체복무가 도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무죄로 판단함으로써 이들에게 사실상 병역 면제의 혜택을 주었다. 현행법상 이들에게 현역 복무뿐만 아니라 대체복무도 강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양심적 병역 거부가 폭증할 것이다. 특정 종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는 것은 마치 입시 전략으로 스펙을 쌓듯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들을 갖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1년에 600명 안팎이던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앞으로는 수십 배 늘어날 것이며, 그로 인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현역 입영을 기피하는 경향에 따른 문제도 만만찮지만, 진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도 난제다.

그동안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어떤 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유죄와 무죄의 판단이 달라졌는데, 앞으로는 진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인정받고, 군대를 면제받는지 여부가 판사들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과정에 논란과 혼란이 많아질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또 병역 특혜 시비는 극심해질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누가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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