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는 많은 전문가의 예측대로 상원은 공화당이, 하원은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가운데 대내외 정국을 주도하는 구도가 깨진 것이다. 물론 미국은 외교안보 분야에 있어서는 행정부,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의회와 사법부를 능가한다. 따라서 공화당이 하원을 민주당에 내준 것만 가지고 향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단견(短見)이다.
그러나 미국의 연방 하원은 다수당이 주도하는 상임위원회를 통해 각종 법률안과 예산안을 심의하고 청문회를 개최해 증인을 소환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즉, 예산 심의와 (청문회를 통한) 조사 감시를 통해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 이는 의제 발굴, 우선순위 설정, 청문회 시점 포착 및 운영, 언론과의 협조관계 설정 등 의원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미국 외교정책에 변화를 기대하는 나라들은 로비스트를 고용해 하원 의원들이 이러한 권한과 역량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기민하게 움직일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단연 미국의 대북 비핵화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모아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지만, 민주당이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찬성했던 것은 대화를 통한 북핵 해법을 추구하는 것, 일괄타결보다 점진적 해결을 도모하는 것, 실질적 비핵화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서 남북 관계와 미·북 관계의 진전 속도를 서로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경험 많은 관료나 전문가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을 자신의 직관에 따라 ‘톱다운’ 방식으로 접근한 나머지 25년간 버텨온 대미 전문가 그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 팀이 돼 움직이는 북한에 전략적 우위를 내줬다고 봤다. 그리고 6·25 종전선언과 같이 본질에서 벗어난 이슈에 (미·북 정상회담부터) 성급히 매달려 북한 비핵화라는 핵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을 경계했다. 대북정책은 견고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동맹을 경시해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을 위태롭게 한다는 불만도 있었다.
이렇게 볼 때, 8일로 예정됐던 미·북 고위급회담이 갑자기 연기된 것을 미·북 관계에 이상기류가 드리워졌다고 말하긴 힘들다. 미국의 정책 변화 추이를 24시간 모니터하는 김정은 정권이나 하원 다수당으로 등장한 민주당의 속내를 고려해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 모두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미·북 싱가포르 합의나 남북 군사 합의서 등에 대해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을 의회로 불러 ‘디테일에 감춰진 악마’를 잘 파악하고 있는지 따져 물을 것이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비행금지구역을 확대하기로 남북한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의했는지 등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관계 실무자들을 소환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새로운 미 의회가 출범(내년 1월 3일)하기까지 북핵 문제에 관해 더 ‘치밀한’ 로드맵을 가지고 미 행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그래야 북측의 실질적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큰 틀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만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도 남북관계 개선도 힘든 상황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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