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미덕의 공동체 /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눈이 오면 자기 집 앞마당을 쓸고, 모두가 퇴근한 뒤 쌓여 있는 찻잔을 씻는 사람. 일본의 지성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는 이런 사람을 ‘미성숙한 사회의 성숙한 어른’이라고 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타인을 생각하고 자기 책임을 다하는 ‘평범한 미덕’. 캐나다 하원 의원을 역임한 정치학자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우치다가 일상 속 성찰로 짚어낸 ‘평범한 미덕’을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사회학적 이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세계화 시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도덕은 전 지구적 윤리, 인권, 인류애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웃의 택배를 받아주는 것 같은 평범한 미덕 그리고 평범한 미덕을 통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책은 카네기 국제문제윤리위원회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경제적인 세계화 시대, 도덕적인 세계화도 이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다. 이를 위해 이그나티에프는 전 세계 7곳을 찾았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보스니아, 미얀마, 후쿠시마(福島),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공생하는 곳, 경제난과 부정부패에 시달리고, 인종청소와 갈등이 벌어졌던 곳, 원전사고라는 대재난이 일어난 곳. 저자는 이 속에서 개개인들이 각자가 마주한 도덕적 딜레마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전 지구적 윤리’의 존재 여부를 찾으려 했다. 서구의 입장에선 경제적 세계화 속에서 전 지구적으로 이전 세기보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됐으니 도덕적 가치도 광범위하게 확산됐을 것이라는 짐작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경제적인 세계화 시대, 도덕적인 세계화는 이뤄지지 못했다’로 내려졌다. 목숨을 잃은 난민들, 극악한 테러, 인종 갈등, 묻지마 살인 등 몇몇 상황만 봐도 500년 전 미셸 드 몽테뉴가 종교 전쟁의 와중에 벌어진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의 학살을 보며 느꼈던 슬픔과 수치심을 우리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세계화됐지만 우리의 도덕과 양심은 지역적이라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개개인에겐 보편적 인류보다는 국가와 민족이 더 우선하고, 우리의 충성심은 세계적이 아니라 지역적이라는 것이다.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보다는 동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난민에 대해 반대하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들 개개인은 영웅이 되지는 못해도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 괜찮은 아들딸이 되고, 이웃과 친구가 되려는 평범한 미덕이 있다고 했다. 우리를 하루하루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인류애가 아니라 이 평범한 미덕이며 이것이야말로 공적인 영역에서 보다 나은 가치를 추구하게 한다고 했다. 평범한 미덕은 매일 평범한 악덕과 전투를 벌이며 자기 주위에 도덕적 질서를 재생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도덕적 존재라고 했다.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사회적 존재인 우리의 생존과 성공은 평범한 미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웃의 자동차가 고장 나면 태워주고, 복도 건너편의 세입자에게 헤어드라이어를 빌려주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웃의 축제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적 개선에선 물러서, 도덕마저 각자도생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제도가 선하고, 공권력과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강할수록 평범한 미덕의 전투력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미덕의 전투력은 임계점에 이르면 폭발해 사회를 바꾼다고 했다. 화려한 말, 위대한 구상이 아니라 일단 내 집 앞을 쓰는 평범하고 선한 행동에 깊은 신뢰를 보내게 된다. 368쪽, 1만8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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