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워싱턴 특파원

“거짓말쟁이는 언제나 맹세를 마구 한다.”

프랑스 3대 고전주의 극작가이자 비극작가이면서도 ‘거짓말쟁이’라는 희극 작품으로도 유명한 피에르 코르네유가 한 말이다. ‘거짓말쟁이’를 보면 코르네유가 거짓말을 일삼는 이들의 맹세가 어떤 것인지를 잘 꿰뚫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희극의 주인공은, 법학 공부를 팽개치고 파리에서 여자를 꾀는 데 전념 중인 도랑트라는 귀족 청년이다. 도랑트는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전쟁 경험을 지어낸 뒤 “전투에서 승리하고, 군대를 지휘하고, 수많은 전공을 세워 내 이름을 빛내는 일, 나를 사로잡았던 이 모든 고귀한 일들을 당신을 섬기기 위해 포기하겠소”라고 떠벌린다.

요즘 북한의 행보를 보면 북한이 말한 비핵화라는 것이 이처럼 믿을 수 없는 맹세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미국 뉴욕에서 지난 8일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미·북 고위급 회담은 북한 측의 요구로 갑자기 연기됐다. 이번 고위급 회담은 그동안 교착 상태였던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논의와 함께 내년 초로 예정된 2차 미·북 정상회담 등을 논의할 중요한 회담이었다. 북한 측 회담 연기에 대해 CNN은 “북한은 미국이 제재 완화 조치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에 정말로 화난 상태가 돼 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 원칙을 강조하자 북한이 회담을 깨뜨린 것이다.

북한은 4월 판문점 선언에는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6월 싱가포르 공동선언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9월 평양 공동선언에는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는 합의를 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은 5월에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를 폭파한 것 외에 아무런 비핵화 조치도 하고 있지 않다. CNN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허울(cosmetic)이며 가역적이라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평가도 이러한 언론, 전문가들 분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무기 및 시설 해체나 반출, 핵시설 리스트 제출 등과 같은 제대로 된 비핵화 조치는 모조리 미국 측의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 이후 하겠다며 미루고 있다.

북한은 자신의 비핵화 맹세를 우선 믿고 제재부터 풀라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맹세를 지켰다면 지금의 북핵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북한은 1992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배치 및 설비)·사용을 하지 아니한다’(1조)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3조)고 합의했다. 하지만 지금 핵무기를 시험·생산·보유·배치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도 북한이다. 거짓말쟁이가 한 맹세를 아무런 증거도 없이 믿을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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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

김석 기자

문화일보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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