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훈 부국장 겸 경제산업부장

2기 경제팀 인사, 오기로 읽혀
무디스, 올 성장률 전망 낮추며
정책 실패를 주요인으로 지목

일자리도 소득도 성장의 결과물
정책 기조 전환이 위기 타개策
2% 성장 고착 땐 민생 고통 가중


이념에 집착한 경제 기조가 바뀌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성적 비판이 통하지 않는 도그마와 아집의 인사로 비친다. 예산국회 와중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등 떠밀듯 내몰고, 그 자리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과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을 앉힌 건 무슨 논리를 대도 오기(傲氣)로 읽힐 수 있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에도, 투자를 꺼리는 시장에 신호를 주기에도 모자란다. 경제 컨트롤타워를 ‘투톱’으로 갈라놓아 갈등을 빚게 하더니, 다시 ‘원 팀’이라고 부르는 어설픈 봉합술도 하책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 새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낙관에서 비관으로 바뀌게 만든 요인은 ‘정부 리스크’밖에 없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9일 한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2.5%와 2.3%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2.7%)보다 0.2%포인트 낮다. 지난해 3.1%를 기록하면서 올해 3%대 성장률을 바라보던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2.5%는 잠재성장률(2.8∼2.9%, 한은 추정)보다 0.3∼0.4%포인트가 낮다. 그 정도로 국내총생산(GDP) 갭이 마이너스로, 실제 우리 경제가 최대 달성 가능한 수준에 미치지 못해 침체돼 있다는 뜻이다. 내년 2.3%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무디스의 가혹한 평가는 대부분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통상정책과 글로벌 통화 긴축 기조라는 대외 여건은 각 나라의 공통 요인이다. 거기에 한국 경제만 짊어졌던 리스크로 최저임금 급격 인상에 따른 기업의 투자 부진, 주택시장 억제에 따른 건설투자 감소, 소비 증가세를 짓누르는 일자리 창출 악화 등을 무디스는 지목했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해온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의 강화에다 혁신 부족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진단이다.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했던 ‘경제체질을 바꾸는 성장통’은 실상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인 셈이다.

그런데도 김 신임 정책실장은 11일 첫 브리핑에서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 “분리할 수 없이 묶인 패키지”라며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선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어디까지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받아야 시장의 고통을 인정할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그 아집은 김 실장이 ‘설계자’요, 홍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야전사령관’이라는 청와대의 인식에서도 묻어난다. “투톱(불화설) 같은 말이 안 나오게 협력하겠다. 하나의 팀으로 임하겠다”고 했지만, 설계자(배후)의 뜻을 거스르면 또 다른 ‘김동연 패싱’은 언제든지 재연될 게 자명해 보인다.

더욱 염려되는 점은 최근 경기 하강을 경고하는 보고서가 잇따르자, 권력 내에선 되레 ‘성장 경시’의 인식이 강화되는 경향이다. 청와대에서건 여당에서건 핵심 인사들은 고용 없는 성장, 낙수효과 무용(無用)을 거론하면서 “2% 성장도 경제 규모에 비하면 괜찮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 함께 잘사는 게 중요하다”고 포용을 내세운다. 문 대통령이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면서도, 경제구조 혁신이 아니라 재정운용의 확대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문제의 진단이 잘못되면, 해법도 패착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산업구조의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신호이고, 낙수효과 감소는 경제 능력(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권력 핵심 인사들이 그토록 의지하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년)은 정부가 개입해 GDP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론을 보여준 것이다. 정부가 경제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크게 바꿔놓은 것이지, ‘GDP 경시’가 아니었다. 더구나 정부 지출 확대만으로는 수요 측면의 단기 부양책일 뿐이고, 소득을 향상하려면 공급 측면이 효율화돼야 한다는 이론에도 학자들 간에 큰 이견이 없다.

경제(GDP)성장은 한 나라의 산출량(경제 규모) 확대를 의미한다. 그게 국민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 후생의 유일한 척도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임은 분명하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실업률을 견딜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유지해주는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소득재분배가 악화하고, 민주주의가 더 취약해진다. 거듭 확인되는 상책은, 정책 기조 전환뿐이다.
오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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