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경제 투톱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동시에 교체했다. 경제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현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을 더욱 힘 있게 추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기엔 부족했다. 대다수 국민은 차제에 정책 전환을 기대했지만 그 반대로 갔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부동산 대책, 탈원전(脫原電) 정책 등에서 실패의 책임이 있는 김수현 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영전시킨 것은 시장에서 뭐라고 하든 대통령이 ‘내 사람, 내 정책’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고용참사, 분배 악화 등 혹독한 경제 침체 속에서 내실 있는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성장 없는 분배’에만 치중할 수는 없다. ‘성장주도 공정 분배’로 전환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이다. 빅데이터 분석 기관인 타파크로스가 매스미디어, 페이스북, 커뮤니티, 블로그 등을 대상으로 지난 1년반 동안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을 분석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선 부정(68.5%)이 긍정(31.5%)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도 부정(58.0%)이 긍정(42.0%)보다 앞섰다. 이런 상황에서 포용과 공정에 비중을 두면서 정책 기조 변경의 타이밍을 놓치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경제에 있어서 ‘문재인에겐 노무현이 없다’는 말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 세력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관철시켰다. “나는 좌파 신자유자의자”라면서 기존의 정책 기조를 바꿔 국익을 우선시했다. 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도 지지층으로부터 미움받을 용기다. ‘친노동·반기업’ 기조에 변화를 주어 시장과 기업이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수현 정책실장은 “더 이상 ‘투톱’ 같은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말보다 실천이 우선이다. 장하성 전 실장도 지난해 6월 21일 김동연 부총리와 가진 첫 경제 현안 간담회에서 “부총리가 경제 정책의 중심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김앤장’(김동연-장하성) 불화설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경제부총리가 원톱을 맡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정부의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를 막는 것이다. 부총리는 경제 논리로 풀어야 할 사안을 이념과 정치 논리로 접근하면 직을 걸고 차단해야 한다. 정치권력이 현실을 무시한 채 경제의 정상적 흐름을 왜곡·변질시키는 것을 막으라는 의미다. 더불어 정부·여당은 야당과 ‘완전하고 체감 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협치’를 이끌어야 한다. 지난 5일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모인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합의했다. 이런 민생 협치가 일상화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담대한 설득의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대통령은 ‘행동하는 협치(協治)’를 위해 집무 시간의 50% 이상을 야당 국회의원들과 수시로 만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안보에 관한 중요한 정보도 야당에 제공해 안보 협치를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만 평화가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다. 단언컨대, 새 경제팀이 출범하더라도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고, 청와대가 경제 정책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며, 말로만 협치를 외친다면 의미가 없다. 경제 성장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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