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열 번째 시집을 낸 후 이젠 시작업을 쉴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 안에서 자꾸 시가 나와서 또 이렇게 시집을 내고 말았네요. 일상의 삶에서 힘든 일을 견디게 하는 숨통이 시작업이었나 봐요.”
김규화(77) 시인이 열한 번째 시집 ‘바람하늘지기’(시문학사·사진)를 펴냈다. 여기 실린 55편은 모두 ‘바람’을 소재 및 주제로 하고 있는 연작시이다.
‘바람이 하늘을 지고 가로누워서 흐른다/방동사니과에 사는 바람하늘지기는/실 같은 이파리가 뿌리에서부터 촘촘해/머리정수리의 가마에서 소용돌이로/풀어 흩어진 머리카락/바람을 한참 마신 다음에/노란 거꿀달걀꼴 열매를 피운다.’
표제작의 앞부분이다. ‘바람하늘지기’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1년생 풀로, 습지나 논둑에서 잘 자라며 퇴비나 목초로 쓰인다. 이 평범한 풀이 바람을 한참 마신 후에 노란 열매를 피우는 모양은 세상사에 흔들리며 시를 낳는 시인의 그것과 겹친다. 시집 해설을 쓴 심상운 평론가는 “이 시집의 시편마다 펼쳐지는 바람과 관련된 섬세하고 다양하고 엉뚱한 이미지들은 시인의 무의식 속 존재의식이 변형하며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시의 공간을 장식하고 있는 이미지의 향연이 독자들에게 관념과 의미에서 해방된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는 점에서 ‘하이퍼(Hyper) 시’의 맛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하이퍼 시는 관념에서 벗어난 사물의 이미지를 인과적 논리성 없이 결합시켜 상상력의 비약을 최대화하는 기법을 활용한다.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문덕수 시인을 비롯한 일군의 시인들이 이 기법을 통해 새 감각의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김 시인은 그 중심에 서서 우리 시의 영역을 최대한 확장해왔다.
그는 1971년부터 지금까지 시 잡지 ‘시문학’ 발행인으로서 한국 문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 때문에 새로운 문학 공간의 창출은 그에게 소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연작시가 자연으로서의 바람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망을 의미하는 바람까지 확장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을 열면 바람이 달려와 내 방을 가득 채운다/사방으로 문 열어놓은 들판에도 바람은 가득 찬다//차는 것은 나의 바람이다/바람이 나의 보람이다.’ (‘보람-바람 25’ 앞부분)
바람의 이미지를 내면의 보람으로 끌어오는 언어의 세공(細工)은 반세기 넘게 시업에 정진한 결실이다. ‘바람떡-바람 41’ 같은 작품을 읽으면, 시 영역을 새로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시인의 시심 원천이 서정에 있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다.
‘얼레빗으로 어르고 참빗으로 훑어/쪽진 머리, 어머니는/얼레빗 모양의 계피팥떡을 잘 빚으셨다/앙꼬 대신 한입 물면/피시식 새어나오는 어머니의 청상(靑孀)이/바람을 많이 마시고는 떠나시었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