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19 평양 정상회담 기념으로 보낸 송이 2t에 대한 답례로 문재인 정부는 제주산 귤 200t을 11∼12일 북한에 보냈다. 이러한 선물 교환은 유엔의 대북 제재 위반은 아닐 수 있다. 정부가 대북 제재 위반을 회피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를 동원하고 그 비용도 청와대 예비비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등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과연 적절한 일인가.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 ‘대타협’으로 명명됐으나, 이제 ‘불완전한 타협’ 또는 ‘실패한 타협’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비핵화 관련해 북한 정권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유엔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까지 제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경제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미국 정부와,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협상을 타개하기 위해 해결사 역할을 해보겠다는 한국 정부 간에 최근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흐르고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서해 5도와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는 일련의 조치들과 미국 재무부가 요청한 국내 국책 및 시중 은행에 대한 대북 제재 준수 등 한·미 동맹의 불협화음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는 경험해 왔다. 또, 반복되는 비핵화 언급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한이 취한 것은 풍계리 핵실험장 입구를 폭파한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북한은 핵무기 리스트 제출 등 핵무기 사찰·검증을 위한 조치를 미국의 제재 완화 조치 이후에 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12일 북한이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등 13곳에 미사일 기지를 운용 중인 사실을 위성 사진 판독으로 확인했다고 공개했다.
여기서 상기할 점은, 비핵화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남북관계의 과속은 한·미 양국 정부 간 신뢰를 해치고 동맹 관계를 이완시킨다는 것이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과연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우리의 독자적인 압박 카드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믿을 건 한·미 동맹 간 공조를 통한 압박밖에 없다.
문 정부는 ‘평화가 경제’라는 말로 국민에게 호소하며 대북 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을 구하고 있다. 반면에 야당은 ‘경제가 평화’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에 기반한 군사력 강화가 안보와 평화를 보증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북한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 체제 속에서 지나친 군사비 지출을 줄이고 경제성장을 구현하겠다는 문 정부의 주장과 배치된다.
이제 통일로 가는 패러다임을 재고(再考)해야 한다. 하나는 북한 정권과의 신뢰 구축을 통한 ‘위로부터의 통합’ 노력이고, 또 하나는 북한 주민과의 소통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통합’ 노력이다. 전자는 안정적인 방식으로 보이나 통합의 가능성이 작아 보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통일 한국의 모습을 확신하기 어렵다. 그 반면, 후자는 불안정한 상황을 유발하는 방식이나 그 가능성이 클 것 같고 더 나은 통일 대한민국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전자와 후자를 결합한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북한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을 방식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 병행 접근하는 방식이 전자를 압박하고 후자를 끌어안는 데 효과적인 방안이다.
지금 북한 정권과의 신뢰 구축을 위해 쏟고 있는 정부 차원의 협력이 북한 주민의 삶의 실질적인 개선과 민주화에 역행하고 결과적으로 통일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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