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산 안창호에 대한 기존 연구가 많다. 이 책의 내용이 그것들과 다른 것은, 정치학과 역사학을 접목해서 도산의 정치적 리더십을 분석하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안창호가 달성하려는 조국 독립이 하나의 국가 창업, 즉 새로운 정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었다고 봤을 때,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실적인 정치 지도력을 어떻게 구사했는지를 살펴봤다.
정치학을 공부한 저자가 도산을 연구하게 된 것은, 독립유공자인 조부 이기준(1891~1927)의 영향이 컸다. 이기준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톈진(天津)감옥에서 고문으로 순국했다. 저자는 조국에 재산과 목숨을 바친 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고, 조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기부 서약을 하는 등으로 사회 공헌에 힘써왔다.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의 정치 리더십을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정한 것도 조부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도산의 정치 리더십은 비무장 예언자(unarmed prophets)의 특징을 지닌다. 현실주의 정치 이론가인 마키아벨리는 무장한 예언자(armed prophets)만이 새 국가 창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도산은 비무장 혁명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순국했다. 도산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카리스마(charismatic) 지도자였으나 그걸 발휘하는 기술, 방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도산은 정치 투쟁을 하면서도 윤리와 도덕의 힘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가 말한 변환(transforming) 리더십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은 임시정부에서 통합을 달성하지 못했고, 무력 통치를 하는 일제를 거꾸러트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우리 한국인에게 정치 지도자라는 이미지보다는 민족 교육자로 더 크게 인식됐다.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지도자보다 지성적 스승을 더 높게 평가하는 우리 지성사의 풍토에서 도산은 겨레의 스승으로 추앙받았다. 도산은 분명 독립운동, 즉 정치 투쟁을 한 현실주의자였음에도 윤리와 도덕을 숭상한 이상주의 교육자로서 존경받는 것이다. 이는 일제 폭정에 맞서 조국 독립이라는 횃불을 들고 고독한 투쟁을 한 생애의 엄결성을 바탕으로 한다. 저자는 “도산의 정치 리더십은 비무장 예언자의 한계를 갖고 있으나,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민족애와 애국심은 오늘 우리가 새겨야 할 거룩한 유산”이라고 했다. 333쪽, 2만 원.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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