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18년째 대학생으로 살고 있는 최원국(62) 씨가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은퇴 후 18년째 대학생으로 살고 있는 최원국(62) 씨가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영원한 대학생’ 최원국씨

47세때 회사에서 잘려 ‘막막’
갈곳 없어 다단계판매 영업도
출세 욕심 버리고 마음 비우니
남는게 시간…그래서 공부 시작

2000년 방통대 법학과 편입
일본학과·환경보건학과 등 섭렵
18년째 한해도 안거르고 학업
가지고 있는 학사 학위만 7개

자기의 인생 사는것이 중요
일찍 은퇴한게 오히려 행운
귀농 관심 올핸 농학과 입학
앞으로도 끊임없이 배울 것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카이스트 대학원 경영과학 석사, 대우경제연구소 입사. 세칭 일류대를 나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단번에 들어갔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치열한 사내 정치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원치 않게 47세라는 이른 나이에 퇴직자 꼬리표를 붙이고 거리로 내몰렸다. 무너져가는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었다.

경영학과, 법학과, 중어중문학과, 일본학과, 환경보건학과, 교육학과, 영어영문학과, 농학과 등 전공만 벌써 8개. 올해 예순두 살의 최원국 씨는 18년째 ‘대학 생활’ 중이다. 최 씨는 2000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한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배우는 과정 자체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가지고 있는 학사 학위만 7개가 됐다. ‘영원한 대학생’으로 살고 있는 최 씨를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에서 만났다.

“늘 혼자 일하고 혼자 지냈죠. 성격이 워낙 ‘꼬장꼬장’ 원칙적으로 따지고 드는 편이라 옮기는 직장마다 저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좋은 이력을 가졌는데도 이른 나이에 직장을 그만둔 이유가 무엇이냐’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담담하지만 솔직한 답변이었다.

최 씨의 말처럼 세상은 그가 책에서 배웠던 것과는 달랐다. 2000년 당시 처음으로 도입된 민간 경력자 채용과정을 거쳐 운전면허시험 관리단에 팀장으로 입사했지만 쫓겨나듯 다시 나와야 했다. 당시 막 도입되던 운전면허시험 시스템 공개입찰 과정에서 고위 경찰공무원 출신 퇴직자의 청탁을 거절한 것이 화근이었다. 해당 비리는 감사원 감사에까지 올라갔고 최 씨는 그 일로 조직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3년 만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실업자가 됐다.

“47살 먹고 회사에서 잘리니 갈 곳이 없더라고요. 학습지 교사부터 보험설계사, 하다못해 다단계 판매 회사 영업까지 해봤습니다.”

주변에서 말도 많았다. 친구들은 최 씨를 두고 ‘서울대까지 나온 사람이 왜 이러고 사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한창 일할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니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도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을 그만둔 뒤 출세 욕심을 버리고 나니 최 씨에게는 남는 게 시간이었고 잡히는 게 책이었다. 많고 많은 일 중에 하필 대학생으로 다시 돌아간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 의외로 최 씨는 ‘아직 내게 남은 인생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예전부터 늦더라도 60살부터는 수입을 떠나 내가 원하는 일에 온전히 시간을 투자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자기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봤지요. 때마침 시간도 많이 생겼으니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을 일단 해봐야겠다 싶었죠.”

우리 나이 44살이던 때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께서 무조건 대학교는 법학과로 진학하라고 강요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당시에는 오히려 죽어도 법학과만큼은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재밌는 것은 막상 시간이 남으니까 ‘할 일도 없는데 법 공부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법학 공부를 시작해보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학생들끼리 모여 하는 스터디 모임이 전날부터 밤새 기다려질 정도였죠. 결국 편입생이었지만 과대표도 맡았고 5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늦은 나이에도 그렇게 여러 종류의 공부를 신나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묻자 최 씨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직장 다닐 때는 내몰리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해왔어요. 당연히 성과도 좋지 않았죠. 하지만 나이가 드니 남의 눈치만 보며 사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면 정말 행복할까요?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사는 것’이에요. 저는 돈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두 번째 인생에서만큼은 내 삶을 최고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찍 회사를 그만둔 것이 오히려 운이 좋았던 셈이죠.”

법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최 씨는 같은 학교 중어중문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다음 전공은 일본학과였다. 나이 들어 읽는 동양의 문학작품에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중어중문학과에 다닐 때는 두보(杜甫)의 시를 제일 좋아했어요. 두보는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고 평생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죠. 두보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공감했습니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도 사라지고 세상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도 함께 눈 녹듯 사라지더라고요. 공부를 하며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마냥 뜬구름 잡는 소리의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9년에는 환경보건학과에 입학, 지속가능한 성장론에 대해 고민도 해봤다. “사실 이과 공부는 태어나서 처음 해봤습니다. 물리, 화학을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요. 기초 과정부터 공부하느라 혼났습니다. 환경보건학과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실험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실험 기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 곤란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숱한 전공 공부를 밤새워 하다 보니 관련 자격증 취득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공인중개사부터 경영지도사, 토양환경기사, 위생사, 사회복지사 등 최 씨가 취득한 자격증만 10여 종에 달한다. 최근에는 산림치유지도사에 관심을 가진 끝에 2급 자격증을 따냈다.

“한마디로 숲 해설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50∼60살은 족히 먹은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천천히 따라 걸으면 말로는 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이 들지요. 도시에 있는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고 육체, 심리적 회복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 경기 양평의 한 소나무 숲에서 나무를 껴안고 명상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어떤 치유법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최 씨는 올해 다시 방통대 농학과 신입생이 됐다. “귀농에 관심이 생겨서 입학했지요.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퇴하고 나면 자기만의 텃밭을 가꾸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귀농·귀촌 50만 시대라는데 미리 공부해 놓아야죠. 농사일, 그거 참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남들은 하기 싫어 죽겠다는 공부가 뭐가 그리 좋을까. 최 씨는 “실은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것이 생기면 피하려고만 한다”며 “끊임없이 부딪쳐 배우는 사람만이 세월과 함께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최 씨는 “실은 다음 주가 기말시험이라 공부할 것이 많다. 우리 과에 80살 먹은 할아버지도 있는데 그분한테 질 수는 없지 않으냐”며 양해를 구한 뒤 급히 책가방을 들고 카페를 나섰다. 그는 오늘도 학교에 배우러 간다.

이희권 기자 leeheke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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