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그라모폰 120주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커다랗고 시커먼 전축의 턴테이블 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던 ‘노란 딱지’는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노란 배경에 튤립 왕관을 쓰고 있는 로고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이 설립 120주년을 맞았다. 축음기 개발과 함께 설립된 이후 음반 시장의 호황기를 지나 배급 방식과 플랫폼에 새로운 도전을 맞이한 현대에 이르기까지 DG의 히스토리를 알면 클래식 음악 시장의 역사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축음기를 발명한 인물은 물론 에디슨이다. 1877년 에디슨의 포노그래프는 원통(실린더)형으로,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소리를 기록, 재생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의 혁신은 놀랄 만한 것이었지만 녹음된 내용을 복사, 대량 제작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를 실현한 인물이 도이치 그라모폰의 설립자 에밀 베를리너(사진)다. 베를리너는 1887년 에디슨의 축음기를 개량해 고정된 바늘 아래서 유리원반이 회전하는 형태의 그라모폰을 제작해 특허를 받았다. 에디슨의 포노그래프가 레코딩의 시초라면 베를리너의 그라모폰은 레코딩 산업의 시작인 셈이다.

DG의 첫 음반은 1902년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의 이름으로 발매됐다. 이후 유럽에서 활동하는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했고, 1904년에는 콧대 높은 소프라노 넬리 멜바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악기의 음색은 1908년 빌헬름 바크하우스의 데뷔 음반인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첫 시도였으며 1913년에는 아르투르 니키슈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5번 전 악장을 4장의 양면 CD에 담아 장당 2달러25센트에 팔았다.

1925년 전기 신호로 인한 고음질 레코딩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베를린 필과의 녹음 작업을 통해 매체에 대한 회의감을 극복했다. 오스카 프리트·오토 클렘페러·한스 피츠너·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뛰어난 지휘자들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하이든·모차르트·브루크너·말러·차이콥스키 등의 작품을 DG에서 녹음했다. 1928년 설립자인 베를리너가 세상을 떠날 당시 DG의 연간 생산량은 1000만 장에 달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세계 경제대공황, 히틀러 치하의 개입 등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클래식 음악사에 중요한 음반들은 계속 기록됐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침체된 DG는 전자 공학 및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운트할스케에 인수됐는데 나치 친위대로부터 인력을 사들여 강제 노역을 시킨 이력으로 세계 음악가들이 DG에 등을 돌리던 시기도 있다. 다행히 음악가이자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엘자 실러가 베를린에 머물며 DG가 이전의 명성을 되찾도록 도왔다.

DG 레이블을 통해 330개의 녹음을 남긴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을 비롯해 카를 뵘·라파엘 쿠벨릭·로린 마젤, 그리고 다니엘 바렌보임·세이지 오자와·레너드 번스타인이 유수의 관현악 작품을 남겼고,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가 은퇴한 이후에는 마르타 아르헤리치·마우리치오 폴리니·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켐프가 피했던 레퍼토리, 리스트나 20세기 피아노곡을 포함해 여러 작품을 녹음했다. 한국의 아티스트 중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이 1990년 이후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있으며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6년부터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MI, 데카 등과 함께 음반사들이 클래식 음악 스타 또는 유명 교향악단과 3∼5년간 전속 계약을 맺고 음반을 적극적으로 기획하던 황금기를 떠나보내고, DG는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기업과 협력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애플뮤직을 켜면 DG가 큐레이팅하는 클래식 음악 채널을 만날 수 있다.

독일·중국 등 곳곳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12월 6, 7일 서울에서 조성진과 안네 소피 무터가 각각 협연하고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선보이는 연주회가 개최된다. 120년 역사를 120장에 오롯이 담아낸 박스 기획물도 소장 가치가 있다.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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