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퀼스

영화 ‘퀼스’(사진)는 사디즘(Sadism·가학적 변태성욕)의 원천이자 주인공인 마르키 드 사드 후작의 감금 기간을 그린 작품이다.

사드 후작은 음란물 유포죄로 투옥되기 직전까지 일상의 대부분을 홍등가에서 쾌락을 위한 갖가지 실험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옥과 정신병원을 수차례 드나든 사드 후작은 갇혀 있는 동안엔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하는 데 몰두했다. 이 영화는 샤렝통 정신병원에 머물렀던 시기의 사드 후작과 그의 초기작 ‘저스틴, 또는 미덕의 불운’(1791)의 탄생 비화를 담은 더그 라이트의 동명 희곡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제목인 퀼스(Quills)는 펜이 발명되기 전 새의 깃털을 이용해 만든 깃펜을 일컫는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 혁명이 진행 중인 1700년대 말. 프랑스는 혁명의 기운으로도 뜨겁지만 나라 곳곳에 퍼지고 있는 음란소설의 열기도 가득하다. 이를 진압하려는 나폴레옹 황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녀에서 남작 부인까지, 음란소설의 인기는 꺾을 수 없을 만큼 높아지기만 한다. 이 소설을 쓰는 익명의 작가는 사드 후작(제프리 러시). 방탕한 기행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지만 병원의 순진한 세탁부 마들렌(케이트 윈즐릿)의 도움으로 그의 원고는 병원 밖으로 빠져나가 전 국민의 머리맡에 놓이는 책으로 만들어진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사드의 책은 점점 인기를 더해가고 병원 운영을 맡고 있는 쿨미에 신부(호아킨 피닉스)는 사드의 원고가 마들렌을 통해 유포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드의 신간 ‘저스틴’을 펼친 신부는 충격에 빠진다. 12세 소녀인 저스틴이 26세의 성숙한 여성이 되기까지 겪는 성 경험담을 그린 이 책은 단순한 변태 성행위를 그린 것뿐만 아닌 수도승과의 성관계와 강간을 그리는 등 신성모독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사드와 우정을 나누는 사이였지만 쿨미에 신부는 사드의 펜과 잉크, 종이를 압수하고 마들렌의 접근을 금지한다. 사드의 집필을 향한 열정은 광기로 변해간다. 펜과 종이가 없는 그는 거울 조각으로 상처를 내 자신의 피로 옷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침대 시트에, 옷에, 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의 글로 덮이기 시작하고, 이를 안쓰럽게 여긴 마들렌은 그의 글을 필사해 출판사로 보낸다.

통제가 심해질수록 그의 책을 찾는 손길이 늘어난다. 각종 체위와 가학적 성행위, 그리고 남녀 성기에 대한 직접 묘사 등이 페이지마다 빼곡한 사드의 책은 혁명의 복판을 관통하는 민중들의 손에서 적지 않은 쾌락으로, 저항의 수단으로 선택되고 수호된다. “권력은 성욕을 자극한다”는 사드의 외침이 그의 책을 통해 혁명의 피로 수혈되는 것이다.

물론 사드와 마들렌의 공모는 오래가지 못한다. 쿨미에 신부와 새로 부임한 고문 전문의사 콜라드(마이클 케인)는 사드의 옷을 벗겨 알몸으로 독방에 가둬버린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드는 동료 정신병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원고를 구두(口頭)로 전달해 마들렌에게 받아 쓰게 한다. 주인이 하녀의 혀를 뽑아 색다른 섹스를 시도한다는 글의 서두는 광기가 극에 달한 사드의 변태성욕과 그로테스크가 지배하는 악의 경전(經典)이 된다. 사드의 글에 영향을 받은 정신병자 중 한 명이 병원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마들렌이 죽게 되고, 분노한 쿨미에 신부와 콜라드는 사드의 혀를 자르는 형벌을 내린다. 혀가 잘린 사드는 쿨미에 신부가 건넨 십자가를 삼켜 자살한다.

이 영화는 전작 ‘북회귀선’(1990)에서 헨리 밀러의 삶을 조명했던 필립 코프먼의 작품이다. 성(性)을 사회적 통제에 대한 저항의 기제로 삼았던 밀러에 이어 또 다른 저항의 아이콘을 선택한 셈이다. 영화적 완성도, 특히 배우들이 보이는 연기적 성취로 호평을 받았으나 사드의 삶을 미화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 사드는 저항의 아이콘이 아닌 주변 여성들을 능욕하고 수많은 섹스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켜 반항아가 된 타락한 귀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 사드의 삶은 권력과 생산의 역학, 즉 예술적 통제가 어떻게 저항과 창조를 자극하는지 역설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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