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진행 중인데 여론 편승
‘무죄 추정의 원칙’ 조차 부정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된 판사들의 탄핵을 국회에 촉구한 결의안을 전날 가결한 것은 무죄 추정이라는 법의 원칙을 판사들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20일 법조계 안팎에서 거세게 나오고 있다. 관련된 검찰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며 재판은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법관대표회의가 서둘러 탄핵 촉구를 결의한 것은 또 다른 여론재판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행정부에 사법부 앞문을 열어줬고, 법관대표라는 판사들은 입법부에 사법부 뒷문을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탄핵안 가결을 주도한 법관들이 19일 국민 여론 부응 등을 언급하며 헌정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 결의문을 채택한 것과 관련, 또 다른 판사는 “판사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여론을 탄핵 근거로 댄다면 정치인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반대 입장의 판사는 “검찰과 일부 판사들이 두고 있는 불확실한 혐의만 갖고 판사를 탄핵하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한 수사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무죄 추정 원칙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을 하지 못하면 무죄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라며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게 전 세계적 공통의 만고불변 진리”라고 말했다. 탄핵 결의안에 반대한 판사들도 “법관이 판결이 아닌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결의안이 찬성 53 대 반대·기권 52로, 1표 차로 가결된 것은 사법부가 둘로 쪼개진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에 향후 사법부 내 갈등의 골이 그만큼 깊을 것을 시사한다. 사법부와 입법부가 ‘합체’하며 삼권분립 원칙이 흔들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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