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나무는 소나무과(科) 중에서 씨가 가장 큰 나무다. 소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100종 이상인데 이 중 잣나무를 비롯해 20여 종만 식용 가능한 씨앗을 갖고 있다.

솔방울처럼 생긴 커다란 잣송이엔 피잣이 들어 있다. 피잣은 아직 딱딱한 껍질에 덮여 있다. 피잣의 껍질을 제거하면 그 안에 얇은 노란색 껍질에 싸인 잣이 나온다. 속껍질까지 벗기면 노란빛이 도는 뽀얀 잣, 백잣이다.

잣은 겉이 딱딱한 견과류의 일종이다. 예부터 기운이 없거나 입맛이 없을 때 원기 회복 음식으로 애용됐다. 잣죽은 요즘도 아픈 사람에게 흔히 추천되는 음식이다.

잣송이의 겉이 딱딱한 데다 점액까지 나와 잣은 까먹기가 힘든 식품이다. 입에 넣기까지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잣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은 오돌오돌하고 부드러운 맛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요리에서 잣은 각종 음식의 고명으로 흔히 쓰인다. 앵두화채·수박화채 등 화채를 만들 때 마지막에 잣을 띄웠다. 죽·수정과·떡·과자 등에 넣어 먹기도 한다. 경기 가평은 향토 음식인 잣국수가 유명하다. 잣을 곱게 갈아 만든 잣육수를 국수 면발에 붓거나 면발에 잣가루를 섞는다. 가평에선 잣묵·잣곰탕·잣막걸리까지 만든다. 가평은 전국 잣 생산의 40%, 잣 유통의 80%를 차지하는 잣 고을이다. 경북에선 떡에 잣가루를 묻힌 잣구리를 즐겨 먹는다. 과거부터 잣은 워낙 귀하고 비싸서 잣이 나는 지방의 원님도 잣죽은 별로 못 먹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잣은 정월 대보름 절식(節食)인 ‘부럼’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날 밤에 날밤·호두·은행·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이 ‘부럼 깨물기’다.

인류가 잣을 먹기 시작한 것은 석기 시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자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남부 프랑스의 동굴에서도 잣 흔적이 발견됐다.

잣은 이탈리아 요리에서 쓰임새가 많은 식재료다. 피뇰리(pignoli)라고 불리는 잣은 페스토·쿠키 등을 만들 때 쓴다. 특히 바질 페스토엔 거의 빼놓지 않는다. 잣의 영단어인 파인넛(pine nuts)도 피뇰리에서 유래했다. 엄밀히 말하면 피뇰리는 유럽 잣(pinus pinea)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은 한국 잣으로 학명(Pinus koraiensis)도 다르다. 영어명도 ‘코리안 파인넛’(Korean pine nut)이다. 중국에선 신라송(新羅松)이라 불린다. 일본에선 잣나무를 ‘조센마쓰’(조선 소나무란 뜻)라 한다.

영양적으론 고지방 식품이다. 마른 잣은 100g당 지방 함량이 61.5g(볶은 것은 75g)에 달한다.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 지방의 대부분이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이기 때문이다. 잣에 함유된 지방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cholecystokinin)의 분비를 도와 음식 섭취량을 최대 37%까지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미국에서 나왔다. 같은 연구에서 잣은 과체중·폐경 여성의 입맛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잣을 먹을 때 불포화지방산이 산패(酸敗)하면 유해물질인 과산화지질이 생긴다는 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잣은 공기와 닿지 않도록 철저하게 밀폐하고 구입 후 가능한 한 빨리 먹는 것이 최선이다. 불포화지방산도 지방이다. 1g당 9㎉의 열량을 낸다. 마른 잣 100g의 열량은 640㎉(볶은 것 708㎉)에 달한다. 양껏 먹다간 다이어트는 물 건너간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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