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 논설위원

11國 참가 CPTPP 올 연말 출범
미·영 가입하면 최대 경제블록
한국, 선택 강요받은 위기 상황


미·중 무역전쟁의 거센 파고 속에서,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 동맹체가 출범한다. 다자간 무역협정인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다음 달 30일 공식 발효될 예정인 것이다. 이 협정에는 일본·캐나다·호주·베트남 등 11개국이 참여하는데, 이로써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5%, 교역량의 15%를 차지하는 거대한 자유무역 경제권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협정 사무국 역할은 뉴질랜드 정부가 담당하고 있다.

CPTPP는 미국도 참여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를 모태로 한다. TPP가 성사됐다면 세계 GDP의 37.4%, 무역비중의 25.9%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무역 협정체제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탈퇴를 선언하면서, TPP는 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미국을 제외한 TPP 11개국이 명칭을 CPTPP로 바꿔 계속 추진하기로 합의한 후, 논의를 거쳐 지난 3월 8일 CPTPP 협정이 공식 서명된 것이다. CPTPP는 미국이 주장했던 지식재산권 보호 및 투자 분쟁해결절차 등 일부 조항을 유예시킨 것 이외에 TPP의 대부분 내용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회원국 11개국 가운데 6개국 이상이 자국 내 승인을 완료하면 60일 이후 발효된다는 협정 내용에 따라 올해 말 발효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멕시코·호주·베트남 등 7개국이 비준했다.

미국이 TPP를 탈퇴할 당시만 하더라도 TPP 불씨가 되살아날 것을 예상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령 살아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명칭과 내용만 약간 수정한 CPTPP가 불과 만 2년도 되지 않아 공식 출범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격화에 위기감을 느낀 아·태 지역 국가들이 급속히 단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고립되거나 아니면 중화경제권에 흡수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대중(對中) 아태 경제블록 형성이 절실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미국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일단은 독자적 경제블록을 통해 활로(活路)를 확보한 뒤, 추후 미국을 불러들이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호주·베트남 등 다른 회원국들도 유사하다.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면서, 거센 보호무역주의 파고를 견디기 위한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일본의 중국 견제 노력은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일본은 공병(工兵)을 초청하는 등, 남태평양 도서 국가에 ‘능력구축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능력구축 지원은 일본 정부가 자위대원을 파견하거나 상대국의 군 관계자를 초청해 방위 장비 취급과 부대 운영 등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을 통해 다른 나라의 군사 능력의 향상을 돕는 활동을 말한다. 일본은 이미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몽골·베트남 등 15개 국가에 이 활동을 벌여왔다. 그런데 이제 이 활동을 파푸아뉴기니·피지 등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호주가 적극 협력하고 있다.

결국 관심은 미국의 CPTPP 참여 여부에 쏠리고 있다. 중간선거를 치른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무역전쟁 진행 추이와 내년 1월 미·일 물품무역협정(TAG) 협상 결과에 따라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TAG가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은 해당 협정을 ‘미·일 무역협정’이라고 지칭하며 물품뿐만 아니라 그 외의 것까지 다루는 포괄적 협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영국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 동맹보다는 ‘대서양 동맹’에 중심을 두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NAFTA)에서 아메리카를 뜻하는 A를 애틀랜틱(Atlantic)으로 바꿔 ‘북대서양자유무역협정’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영국 보수당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영국이 미국과 함께 CPTPP에 들어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고 일본과 영국을 양 날개로 하는 세계 최대의 해양 경제 동맹체가 구축되게 된다.

중국은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CPTPP가 중국을 고립시키는 경제블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도 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CPTPP가 요구하는 개방·투명성 수준이 높아 이를 중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지난 18일 폐막한 파푸아뉴기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못했다. 중국이 ‘불공정한 무역관행’이란 문구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중국 눈치를 보느라 TPP에 참여하지 않았다. CPTPP에 들어갈 것인지, 중화경제권에 편입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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