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촌탑 훼손탓에 출입통제
안중근 기념비는 사라졌다가
고려인 센터에 옮겨 자리잡아
항일 ‘공동기억’ 보존하려면
현지 당국의 협조·관리 필수
中·러와 학술연구부터 나서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면 먼저 찾는 곳이 신한촌기념탑이다. 독립운동의 요람일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50만 한민족의 근원지임을 기념해 3·1 독립선언 80주년이었던 1999년 세워졌지만, 철책으로 닫혀 있다. 현지인들의 훼손이 심해 출입을 통제한 것이다.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 마당 한쪽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쓸쓸하게 놓여 있다. 안중근 의사의 1909년 하얼빈 의거 직전 2년은 블라디보스토크와 떼놓을 수 없다. 원래 이 기념비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다. 2002년 서울보건신학연구원과 현지 주립의과대학이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대학 구내에 세워졌으나 2012년 뿌리가 뽑힌 채 사라져버렸다. 시청에 방치돼 있던 기념비는 2014년에 고려인 문화센터로 옮겨졌다. 독립운동 사적지를 보존하고 기념하는 데 우리 후손들이 무엇을 선행해야 할지 말해준다.
◇귓전에 맴도는 ‘선구자’
연해주와 만주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독립운동가들이 이용했던 주요한 루트였다. 연해주는 한인 개척사의 출발점이자 구한말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해외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이 지역에 대한 국내 연구는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독립기념관과 국가보훈처 등이 이 지역의 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를 해왔는데, 전 세계에 산재한 약 800개의 사적지 가운데 103개가 러시아에 있고, 그 대부분은 연해주에 있다. 중국이 402개로 가장 많으며 이 또한 만주 지역에 집중돼 있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1930∼1940년대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만주로 옮겨간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독립운동 사적지를 탐방하며 귓전에 계속해 맴도는 노래는 가곡 ‘선구자’였다. 드넓은 광야에서 말 달리던 독립운동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목숨을 건 열정과 결단, 고뇌가 노래 가사와 어우러져 현장감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독립운동 현장교육의 절실성이 와 닿는다. 나열식, 암기 위주의 독립운동사 학습은 선조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며, 학생들도 자신과는 별개의 세계에서 살아갔던 이들로 인식하게 한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시대에 연해주-만주는 이제 교육과 관광 요소가 결합된 비교적 저비용의 체험프로그램으로 활용해 볼만하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국독립운동사적지 현황과 활용방안’을 연구했던 김주용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원은 “역사교사들에게 이 지역의 연수기회를 부여하는 게 우선돼야 할 일”이라고 조언한다. 현지의 한인 후손, 이른바 ‘고려인’과 ‘조선족’도 한국 동포들의 관심과 여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루트를 따라
연해주와 만주를 잇는 사적지 탐방은 당시 독립운동가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는 길이다. 신한촌기념탑에서 시작해 그 아래에 일제에 저항했던 작가 조명희(1894∼1938) 문학비와 ‘서울 거리’, 개척리 등을 둘러본 뒤 우수리스크나 크라스키노로 이동한다. 우수리스크에는 최재형의 집과 이상설 유허비, 고려인 문화센터를 볼 수 있다. 막심고리키 거리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 2차 회의가 열렸던 건물이 있다. 사실상 최초의 임시정부가 태동한 역사적인 장소다. 지금은 학교로 사용하고 있고, 2010년 기념동판이 부착됐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 소란스러웠던 탓인지 학교 관계자들이 교내 출입을 막는다. 크라스키노에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2월 동지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한 단지동맹기념비가 있다. 2001년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세웠는데, 다소 방치된 것을 관리가 용이한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러시아 국경수비대 관할 통제구역이어서 한국인들의 참배가 어렵자 현지에 농장을 일궈온 ㈜유니베라의 도움으로 그 농장의 입구에 잘 보존돼 있다.
훈춘(琿春)을 거쳐 국경을 넘어가면, 투먼(圖門)에서 왕칭(汪淸)현으로 가는 길목에 봉오동전적비와 허룽(和龍)현 청산리전적비, 룽징(龍井) 명동촌(明東村), ‘선구자’의 배경이 된 비암산 일송정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압록강변 지안(集安)의 광개토대왕릉과 장군총, 고구려 국내성, 환도산성 등 고구려 유적, 백두산 관광과 연계한다면 고대사와 변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싹틀 수 있다.
◇현지 당국과 ‘공동의 기억’ 관리해야
신한촌기념탑이나 안중근 기념비의 훼손에서 보듯, 극악한 일제에 함께 맞섰으면서도 그 ‘공동의 기억’에 대한 관리는 서로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한국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의식이 필요하며, 한쪽만이 아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념비 등을 설치하더라도 조급하고 근시안적인 홍보성 성과보다 한·러, 한·중 간에 학술적 공동연구 등을 선행해 현지 당국의 협조를 얻어 구체적인 활용·관리방안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의 경우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에 대한 견제와 역사왜곡이 심한 편이다. 지난달 장수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을 찾았을 때 한국어로 설명 중인 가이드에게 중국인 관리원이 쫓아다니며 “말을 하지 말고 둘러보기만 하라”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 그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에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발의한 ‘최재형 추모비 건립’과 관련한 예산이 심의 중이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이 일본군에 의해 볼로다르스카야의 집에서 붙잡혀 끌려가 무참히 살해된 왕바실재 언덕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나 안내판조차 없다. 이 사업 역시 현지 당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선행돼야 보존·관리가 수월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 글·사진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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