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 법조계 치부를 파헤친 ‘불멸의 신성가족’을 쓴 김두식(사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법조인들을 분석한 ‘법률가들’(창비)을 펴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책은 앞서 나온 ‘불멸의 신성가족’의 뿌리에 관한 책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판 간담회에서 “한국 법조계의 뿌리가 생각처럼 단단하지 않다”며 “해방 당시 조선인 판사와 검사는 전체의 30%가 되지 않아 법조계는 인물도, 제도도, 돈도 부족했다. 시험에 안 붙은 사람도 많았고 빈약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한국법관사’ 등 공식 기록물과 관보, 자서전, 신문기사, 합격자 명단 등을 참고해 광복 시점부터 5·16 군사정변까지 법률가 약 3000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1945년 이후 법조계에 몸담은 사람들을 4가지 부류로 나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인물들이 1그룹으로, 이들이 박정희 정부까지 법조계를 주도했다. 2그룹은 1922년부터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이고, 3그룹은 일제강점기에 서기 겸 통역관으로 일하다 판사와 검사에 임용된 사람들이다. 4그룹은 해방된 다음 각종 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법률가들이다.
1그룹에서는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어난 김영재와 친일 가문 출신인 민복기가 대비된다. 김영재는 서울과 평양에서 검사로 근무했던 친일 행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해방 이후 3년간 자숙했다가 서울지검 차장검사로 복귀했다. 이후 남로당에 가입해 제1차 법조프락치 사건에 연루,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행방불명이 됐다. 반면 친일 가문 출신인 민복기는 판사생활을 하다 해방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통령 법률비서관,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김 교수는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은 예상 이상의 불행을 맛봤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 추구한 사람은 기대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고 평가했다.
3그룹은 일제강점기에 경력 7년이 넘는 서기들로, 시험 없이 판사나 검사에 임용됐다.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부친인 이홍규가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이 시절 시작된 병폐는 법조계 적폐의 뿌리가 됐다. 서기와 통역관은 법조 브로커의 시초가 됐다”고 말했다. 4그룹 중 법조계 최대 스캔들로 평가되는 ‘이법회(以法會)’ 출신도 흥미롭다. 1945년 8월 14일 시작된 조선변호사시험에 응시했다가 해방을 맞으면서 감독관이 사라지자 응시자들이 이법회를 결성해 합격증을 요구했고, 실제 남쪽의 106명이 합격증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의 대법원장 유태흥과 인권 변호사 홍남순이 이법회 멤버였다.
김 교수는 최근 사법농단에 대해 “헌법에 적힌 대로 법관 개개인이 독립해야 한다”면서도 “정권 출범 당시 검찰 개혁 흐름은 사라지고 검찰이 주도하는 법원 개혁이 됐다. 단시간에 검찰이 주도권을 갖게 된 상황이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다”고 검찰 주도의 사법개혁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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