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난데없이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가 결성돼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환영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백두칭송위는 문자 그대로 김정은을 찬양하고 ‘칭송’하기 위해 국민주권연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 13개 시민단체 200여 명의 진보좌파 인사들이 결성한 조직이다. 그들은 ‘김정은 칭송 영상’을 송출하고 북한의 모란봉악단이 부른 노래와 춤을 따라 하는가 하면, 앞으로 김정은 서울 답방 환영 서명운동, 전국 순회 예술 공연, 환영 차량 스티커 부착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시민으로부터 열렬히 환영을 받았으니 우리도 김정은의 답방을 ‘열렬히’ 환영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그들은 통일을 위해 자신의 안전도 개의치 않고 목숨을 걸고 서울 답방을 하겠다는 김정은의 평화를 위한 의지를 칭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를 놀래킨 김정은 신드롬’ ‘김정은 위원장, 1년을 10년 맞잡아 만리마 시대 열다’ 등의 제목으로 올린 블로그 기사에는 김정은을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디어형 리더십’ ‘풍자와 유머를 구사하는 여유형 리더십’ ‘직접 현장을 지휘하는 실무형 리더십’ 등으로 칭송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글쎄’ ‘착잡하다’ ‘말도 안 된다’ 등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면서 그들의 활동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부터, 광화문 네거리에 김정은 칭송이 웬말이냐며 그들을 고발한 ‘백두청산위원회’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그 활동 비용이 어디서 났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절대적 독재자를 칭송할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대화를 통해 평화를 진행하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그 일환으로 김정은의 방한(訪韓)을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 수 있다는 문 정부의 판단도 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역사적인 시각에서 몇 가지 고려돼야 할 점이 있다.
북한은 지난 70여 년의 분단 기간에 수많은 반(反)인륜 범죄를 저질렀다. 우선, 김정은은 그의 조부인 김일성이 일으킨 6·25 남침 전쟁으로 인해 민족의 비극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 국왕 방한의 조건으로, 일제 식민지 시절의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침략은 같은데, 일본에는 사과를 요구하면서 북한에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서와 화해의 시작이 될 수 없다.
이와 함께 군사적 충돌은 차치하고라도 북한이 그동안 자행해 온 민간에 대한 범죄들(KAL 858기 폭파, 연평도 포격 도발, 박왕자 주부 사살 등)에 대한 사죄와 재발 방지 약속이 있어야 한다. 특히, 그의 집권 이후 발생한 범죄에 대해 반성과 사과가 없다면 우리는 그를 진정 환영하기 어렵다. 끝으로, 무엇보다 비핵화의 명확한 의지와 함께 일정과 방식도 구체화해 남북한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김정은 답방의 중요성은 비핵화를 위한 신뢰 쌓기에 있다. 그렇다면 위 요구는 김정은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다. 이러한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종북좌파를 제외하곤 그를 열렬히 환영할 서울시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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