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전 한 정치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가 ‘당신은 가짜뉴스’라고 쓰인 티셔츠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가짜뉴스는 편집된 진실의 극단적인 면을 보여준다. AP연합뉴스
- 만들어진 진실 /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방대해진 정보가 혼란 가중 뭐가 진실인지 아무도 몰라 무얼 믿고 따라야 할 것인가
부분 부분 조합해 확대·축소 교묘한 편집 통해 대중 현혹 ‘오해용 진실’과 맞서 싸워야
항상 명확한 설명·확언 요구 ‘열린 마음’ 유지하는 훈련을
인터넷에 대한 다음의 두 문장 중 무엇이 진실인가.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 지식을 폭넓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 때문에 잘못된 정보와 증오의 메시지가 훨씬 더 빨리 확산된다’. 인터넷의 상반된 측면을 다른 각도에서 본 결과로, 당연히 둘 다 진실이다. 좀 더 논쟁적인 경우를 살펴보자. 다음의 문장에서 말하는 이 사건은 무엇인가. “이 사건으로 비행기나 스테인리스, 생리대 등 운송 수단, 도구, 개인 위생과 관련된 중요한 여러 기술이 개발됐다. 많은 사람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표권을 얻는 등 민주주의가 꽃피었다. 사회적 평등이 향상됐고, 영세민의 식단은 개선됐으며 유아 사망률은 감소하고 기대수명은 늘어났다. 특히 여성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양성평등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이 사건은 무엇일까? 정답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부분은 가리고 1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사회·경제·정치적 변화 중에서 긍정적인 것에만 초점을 둔 서술이다. 그렇지만 이 설명이 거짓말은 아니다. 스릴러 소설가이자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전략가인 이 책의 저자 헥터 맥도널드는 ‘진실은 99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며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 시선·각도·관점 등에 따라 여러 진실이 ‘경합’한다고 밝힌다. ‘경합하는 진실(competing truth)’, 이것이 진실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진리와 진실은 인류의 오랜 존재론적·인식론적 성찰의 대상이었지만 인류 역사에서 지금처럼 진실이 어지러운 때도 없었다. 가짜를 진실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호도하는 ‘가짜뉴스’가 그 정점에 있지만 가짜뉴스뿐만이 아니다. 기존 권위의 몰락, 미디어와 소통 방식의 변화, 인터넷을 필두로 한 플랫폼의 다변화, 개성과 취향의 시대 등 저자의 표현대로 스파게티 면처럼 얽힌 여러 이유로 진실은 지금, 어지러운 난장에 나와 있는 형국이다.
과거에는 교회나 왕, 혹은 전체주의 정부 같은 권력기관이 진실을 결정했다. 그 뒤 계몽된 시기에는 신뢰받는 대중 매체가 역할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출처에서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더 이상 뉴욕타임스나 BBC가 세상의 정보를 정리해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진실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뉴스를 대신 골라줄 게이트키퍼도 없다. 또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입장에 따라 진실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를 두고 경제학자, 노동조합 대표, 환경주의자, 안전 전문가, 자동차 제조사, 보험사, 도시계획자, 행정당국자의 진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경합하는 진실’은 카메라에 비유될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프레임 안에 무엇이 들어갈지는 촬영자가 정한다. 줌 기능을 써서 물건의 크기를 바꿀 수도 있고, 하나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고,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밝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한 장면을 두고 수천 장의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진실도 이와 같다. 진실이 진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됐다. 이런 시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진실을 판단할 기준은 상당 부분 개인의 몫으로 넘어오게 됐다.
저자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나는 많은 진실들이 ‘만들어진 진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모두 팩트를 편집해 진실을 소비할 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짜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판별이 쉬운 완벽한 거짓말이 아니라 부분적인 사실과 진실을 조합하고, 특정 부분을 확대·축소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오도자들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더 파고들기만 하면 저들이 진실성을 유지하면서 우리를 계속 오도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의심할 수 있을 때는 의심하라. 명확한 설명과 확언을 요구하라. 여지를 주지 마라. 뭐가 빠져 있다 싶으면 물어보라. 숫자가 오해를 일으키도록 제시되어 있다면 다른 해석을 시도하라.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나 이름이 동원되면 관련성이 있는지 의심하라. 저 주장의 기초가 된 도덕적 가정이나 신념이 뭔지 질문하라. 공식적으로 용어를 정의해 달라고 요구하라.” (390쪽)
책은 우리가 편집된 사실, 편집된 진실을 한눈에 간파할 수 있도록 31가지의 진실 편집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불편한 진실을 다른 수많은 진실 속에 파묻어 버리는 ‘어지럽히기’, 관련 숫자를 더 크게 혹은 더 작아 보이게 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법, 집단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방법, 이야기를 만들어 스토리로 설득시키는 방법 등이다. 이 같은 진실을 편집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이를 알수록 우리는 그만큼 진실의 편집에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저자는 사실을 오도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팩트가 진실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경우를 만나면 ‘오해용 진실(#misleadingtruth)’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이자고 제안한다. 오해용 진실을 목격하면 언제든 큰 소리로 알리고, 이들에게 오도자라는 꼬리표를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오해용 진실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더 대표성 있고 더 온전한 진실밖에 없다고 저자는 밝힌다. 책임감을 가지고 이슈를 더 완전하게 이해하고, 찾을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데이터를 이용해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 진실인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떠드는 사람들의 주장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고, 확증 편향을 피하고 열린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훈련을 해야 한다. 분열되고 편향된 대중 매체 속에서 가장 정직한 진실을 발견해내고 전파할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한다. 모든 시작은 각각의 자리에 있는 개인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고, 이들 흩어진 개인들의 의심과 발견, 책임 추궁과 이를 위한 목소리 높이기가 결국 진실을 향한 전면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416쪽,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