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글자가 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책을 고르려고 하면 몇 가지 고민이 생긴다. 글을 배우기 전에는 누군가 읽어주는 문장을 들으며 그림을 동반해 내용을 이해하던 아이들이 스스로 글만 읽고도 책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선다. 첫걸음마를 위한 신발을 고를 때처럼 문장은 정확한지, 이야기의 길이는 적당한지, 낱말이 어렵지는 않은지 더 꼼꼼히 살피게 된다. 작가들도 유년동화를 쓸 때면 몇 배 더 신중하게 창작에 공을 들이지만 감칠맛 있게 쓰기는 쉽지 않다.
‘꼬마 너구리 요요’의 이반디 작가는 그 일을 맞춤처럼 자연스럽게 해내는 드문 창작자다. 특히 이반디 작가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다. 이해관계에 찌들면 눈에 띄지 않는 또래 어린이 사이의 투명한 신호를 작가는 금방 알아본다.
작가의 인과관계는 종종 결과를 원인으로 뒤바꾸고 마음이 가면 무관해 보이는 것도 이유라고 덥석 믿는다. 눈물을 흘리며 웃었기 때문에 다람쥐는 재미있는 친구였고 우리 엄마가 만들어주었으니까 새 옷이 된다. 이야기의 어린이 인물들은 자신들만의 원칙이 뚜렷하며 작가는 그 원칙을 공손하게 존중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선물은 없으니까 거절하지 않아야 하고 친구가 왜 나만 사랑하지 않는지 궁금하지만 그건 그 아이의 마음이니까 놀면서 잊고 미워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은 아널드 로벨의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예민한 촉각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차갑지 않게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어린이의 마음에 가져다 댄다. ‘내가 더 잘할게’에서 꼬마 너구리 요요는 서운함이 무엇인지 배운다. ‘새해’에서 뭔가가 시작될 때의 설레는 기분을 이해한다. ‘정어리 아홉 마리’에서는 덧셈을 배우는 산쥐왕자에게 모자란 손가락을 빌려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작가는 조금도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가장 위엄 있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그림책 ‘조랑말과 나’에서 동물의 표정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담아냈던 홍그림 작가의 일러스트도 사랑스럽다. 훌쩍이는 요요의 등에 콩나물을 다듬다 말고 다가와 가만히 손을 대는 엄마 너구리의 모습은 어린이 곁의 어른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이제 나 혼자 읽어볼 거야”라며 책을 들고 의자에 앉는 어린이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유년동화를 쓰고 싶어 하는 작가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92쪽, 90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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