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학

정부의 발표를 반대로 읽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부가 연탄값을 올리지 않겠다고 하면 얼마 뒤 가격이 인상되곤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올리지 않을 거라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올릴 생각이니까 사재기를 우려해 애써 인상 계획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재산을 ‘자발적으로’ 국가에 헌납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굳이 이런 발표를 정부가 한 것도 재산권의 포기가 비자발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최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는 민노총·전교조·민변만의 정부가 아니라고 쓴 게 보도됐다.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정부가 이들만의 정부였다고 실토한 것이나 진배없어 보인다.

이 중 민노총에 대한 정부의 배려는 ‘민주노총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특별했다. 정부는 ‘촛불 청구서’를 청산하느라 자영업자와 기업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親)노동정책을 대거 펼쳤다.

그런데도 민노총의 요구는 폭주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실력행사도 점점 그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 자신들을 둘러싼 채용비리·고용세습 의혹 등에는 눈을 감은 채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광주형 일자리 등 정부가 경제 현실을 고려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딴죽을 걸고 있다. 자신들의 요구를 압박하기 위해 지난 두 달 동안 대검찰청 등 정부 청사와 공공기관 6곳을 점거, 농성했고 다음 달 1일에는 여야 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국회를 포위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런데 노사 분규 사업장인 유성기업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민노총에 속하지 않은 노조원들과 협상을 벌이던 노무담당 임원을 집단폭행해 중상을 입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언론에 보도된 노조원들의 행태는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50여 명의 노조원이 회사 대표이사 집무실로 몰려가 문을 부수고 난입한 뒤, 책상과 집기로 다시 문을 막고 한 시간 가량 폭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찰의 대응이다. 여섯 차례의 출동 요청 끝에 20여 명의 경찰이 도착했지만, 상황이 끝날 때까지 40여 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한다.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욕설과 조롱을 듣는 수모도 겪었다.

최근 국회에 출석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당시 도심에서 연일 불법 시위를 벌이던 민노총을 겨냥해 “어떤 집단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고 했다. 뒤늦었으나 이제라도 이번 사건을 엄정하게 사법처리해 ‘정부 위의 민노총’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가 빚쟁이에 시달리는 채무자처럼 구니까 경찰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10월 프랑스 국빈방문을 마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시위를 프랑스대혁명에 비견되는 사건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간과한 게 있다. 혁명 이후 오랫동안 군중의 직접 행동으로 혼란과 무질서를 호되게 경험한 프랑스에서는 헌법 제3조에서, 국민에게 주권이 있지만 그 주권은 국민의 대표와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행사되며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이 특수하게’ 행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른바 ‘촛불혁명’이 프랑스대혁명과 이어지려면 그 ‘주력군’을 자처하는 민노총이 국민의 이름으로 특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래야 조폭 수준의 폭력 행위가 자행되는데도 민노총이 무서워 꿈쩍 않는 경찰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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