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연 ‘만남’ ‘바램’ ‘사랑’

어느 선까지 비밀을 공유해야 부부일까. “다들 핸드폰 올려봐.” 영화 ‘완벽한 타인’에선 신호가 울릴 때마다 관객도 배우만큼 긴장한다. 특히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 진주 ‘난 괜찮아’의 원곡)가 나올 때 몰입도가 높다. ‘네 잘못을 헤아리다가(Thinkin’ how you did me wrong)/ 난 강해졌고 사는 법도 배웠지(And I grew strong and I learned how to get along)’.

음악은 부서진 기억을 재건하고 드디어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의 사운드트랙과 접속한다.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눈에서 태양이 떠오른다고 생각했죠(I thought the sun rose in your eyes)’(로버타 플랙 ‘더 퍼스트 타임 에버 아이 소 유어 페이스-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중). 맹목의 집착이 영화음악 속에 안개처럼 젖어든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사랑은 이따금 실수와 바꿔 끼울 수 있는 단어다. 결혼행진곡에 맞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들이 부부의 길을 떠난다. 평화롭게 동행하려면 예의와 존중이 필수적이다. “선택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집중만 해라.” 이건 좀 아니다. 극장을 나서려는데 마지막 자막이 관객을 붙잡는다. ‘인간에겐 3개의 나가 있다. 공적인 나, 사적인 나. 그리고 비밀의 나’. 모두 다 보여주는 게 결혼의 정석은 아니다. 누구라도 타인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권리는 없다. 골든벨(50주년 금혼식)을 울리고 싶다면 결정해야 한다.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금단의 구역에 도전장을 내민 순간 ‘님’은 도로 ‘남’이 된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김명애 ‘도로남’ 중). 부부가 하나라는 믿음은 불을 껐을 때 일어나는 아련한 착시현상일지 모른다.

무대에 함께 있는 모습만으로도 웃음을 생산하는 노사연(사진), 이무송 부부가 노래인생 40년을 맞아 연예기획사를 차렸는데 간판이 무사엔터테인먼트다. 두 사람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는데 결혼 24년을 ‘무사’히 잘 넘긴 걸 기념하는 뜻도 있을 게다. 사실 노사연은 데뷔(1978년 대학가요제) 때부터 ‘무사’의 자신감이 넘쳤다. 고난의 여정도 있었지만 ‘산 넘어 넘어 돌고 돌아 그 뫼에’(‘돌고 돌아가는 길’ 중) 우뚝 올라섰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인 걸 거뜬히 입증한 셈이다.

살다 보면 지칠 때가 있고 그때마다 힘이 되는 노래가 있다. 노사연의 인생 3부작 ‘만남’ ‘바램’ ‘사랑’은 중장년 주부들에게 응원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노래들은 묘하게 연결고리를 갖는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만남’ 중).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바램’ 중). ‘하루하루 당신 볼 때마다 난 다시 태어나죠/ 천 번 만 번 하고 싶은 말/ 듣고 있나요 사랑해요’(‘사랑’ 중). 그런가 하면 이무송의 메가 히트곡 ‘사는 게 뭔지’는 위기의 남편들에게 건네는 ‘진군가’로 손색이 없다. ‘사랑을 하면서 후회는 왜 하나/ 정들어 사는 인생 힘들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불같은 사랑은 잠깐이다. 차라리 물 같은 사랑이 낫다. ‘시냇물 흘러서 가면/ 넓은 바닷물이 되듯이/ 세월이 흘러 익어간 사랑’(서유석 ‘나는 너를’ 중)이 진짜 사랑이다. 과거를 기억하되 좋은 것만 편집해서 공유하는 것이 ‘롱런’의 지혜다. 속이 상하면 겉도 상한다. 겉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 곁을 만들어보자. 지금 당신 곁에 누가 있는가. 혹시 둘 사이가 이미 타버렸거나 얼어붙지 않았는가. 사랑에도 적정 온도가 있다. 곁이 따뜻해야 사랑이 발효한다. 좋은 배우자(함께 배우자)는 호위무사 겸 인생의 유격조교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바램’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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