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프라이버시 경제 / 안드레아스 와이겐드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개인 데이터 공유·분석 통해
제품·서비스 제공되는 세상

프라이버시 고수하려 애쓰면
평균적 정보 얻는데 그치지만
적절하게 선호도 표현 할 땐
질좋고 최적화된 서비스 받아

기업이 정보 투명하게 본 만큼
개인도 기업점검 권리 가져야


“구글 지도는 내가 저녁 7시 12분에 친구 집에 도착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예측은 늘 그렇듯이 몇 분의 오차를 두고 맞아떨어졌다. 친구는 담배 제품과 다양한 마리화나 흡연용품을 판매하는 상점 위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GPS 수신기는 가정집과 상점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동통신사와 구글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마리화나용품점을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자러 가기 전 일기예보를 확인하다가 함께 뜬 구글 광고를 보고 깨달은 사실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정보는 이처럼 매 순간 기업과 정부 조직에 축적된다. 웹서핑을 할 때 이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건강보조제와 유사한 광고가 항시 뜨거나, 어디를 가든 그 주변 맛집이 스마트폰에 불쑥 나타나는 것은 이제 신기하지도 않다. 2000년 한 해 동안 생성된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데 지금은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 2020년에는 1시간이면 족하다. 소셜 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활동과 습성, 건강, 자주 가는 장소와 사용하는 제품, 타인과의 관계망은 물론 성격과 감정의 변화, 성적 지향성이나 정치적 성향, 이데올로기까지 파악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미 2013년에 페이스북의 ‘좋아요’ 정보만으로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구분하는 데 88%의 성공률을 보였다.

소셜 데이터는 자발적으로 구글 등에 로그인해 공유되기도 하지만, 인터넷이나 휴대 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의지와 상관없이 공유되기도 한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수집, 즉 데이터의 공유에 동의해야 하며 이를 거절하면 이용할 수 없다. ‘좋아요’ 처럼 단순한 관심이나 지지의 표시도 개인의 정보로 이용된다. 소셜 데이터는 사람들의 취업과 신원보증, 신용등급까지 좌우할 정도로 옥죄고 있다. 데이터를 분석해 구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성향이 회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서류전형에서 탈락시키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프라이버시가 사라진 사회,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러더’의 디스토피아가 닥친 것이다.

글로벌 기업 아마존의 전 수석 과학자로서 데이터 전략을 수립했던 이 책의 저자는 이를테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주장을 편다. 그는 “개인 데이터의 상당 부분은 본인의 통제를 벗어난 세상이 됐다”며 “프라이버시라는 낡은 개념에 갇혀 있게 되면 데이터가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데이터를 생성해 공유하고 대부분 제품과 서비스가 그 분석을 통해 제공되는 시대에, 프라이버시를 고수하는 사람은 제품·서비스에 대한 평균적 정보만 얻지만, 적절히 선호도를 표현하는 사람은 최적화되고 질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된다. 차라리 개인정보를 내주되 그 이상의 대가를 얻도록 노력하는 게, 프라이버시가 더 이상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이른바 ‘포스트 프라이버시’ 시대, ‘소셜 데이터 혁명’의 시대에 합리적인 적응 방식이라는 것이다. 데이터라는 자원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 생산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룡’ 데이터 기업에 개인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 비대칭’의 상황에서 소비자는 ‘을’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데이터를 공유하고 취합할 때 발생하는 혜택과 위험을 가늠할 기준,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책임지게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투명성’과 ‘주체성’이라는 원칙을 제안한다. 투명성은 기업이 개인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만큼 개인도 기업을 투명하게 파악할 방법, 즉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와 데이터 기업을 점검할 권리다. 어떤 데이터를 누가 가지고 있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혜택이나 위험을 가져오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주체성은 자신의 데이터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용할 권리를 말한다. 데이터를 수정할 권리, 데이터를 흐릴 권리, 데이터를 이전할 권리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이처럼 “데이터 기업으로부터 유의미한 권리와 도구에 대한 동의를 끌어낼 수 있다면 개인과 기업의 관계가 역전될 것”이라고 낙관하며 이를 ‘부호 반전(sign flips)’이라고 부른다. “기업이 아무 힘도 없는 고객에게 무엇을 구매할지 정해주던 시절은 갔다. 기업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는 머지않아 고객이 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그린다는 점에서, 거대 데이터 기업을 위해 일했던 저자의 편향된 시각도 감지할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를 위해 소셜 데이터를 활용하는 국가와 기업이 과연 ‘갑’의 위치를 포기할지는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440쪽, 2만2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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