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수 없어 / 마르 파봉 글, 마리아 지롱 그림 / 고양이수염 옮김/이마주

오래 전이지만, 철학 전문 학술서적을 펴내던 서광사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그림책을 시리즈로 출간했다. 이 시리즈가 소개한 작품 덕분에 거꾸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독자가 있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업이었다. 분도출판사에서 나오던 두께가 얇은 그림책들도 잔잔한 반성적 통찰을 끌어내는 주제들로 인기를 모았다. 철학과 그림책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떨어질 수 없어’도 ‘철학하는 아이’라는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런 시도는 어린이에게 생각의 권리와 자유를 돌려주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반갑다.

이 그림책은 “우리는 하나로 태어났어요”라는 주체가 불분명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누구일까? 신발 가게의 진열대를 보고 환호하는 표정을 보았을 때 아이가 고른 파란 구두와 이 아이가 나란히 ‘우리’인 것 같다. 아이와 구두는 함께 달리고 춤춘다. 아이가 잠들면 침대 머리맡 그림 속에 놓인 구두도 잠든다.

여기에 작가는 하나의 고민을 얹는다. 어디를 가든 함께였던 구두의 한 짝이 낡아서 신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둘 다 쓸 수 없으면 한꺼번에 쓸모없어지는 것이 구두의 운명처럼 보인다. 아이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줄 알았던 구두와 이별해야 한다. 파란 구두는 쓰레기장으로 실려 가고 여기서부터는 버려진 채로 둘이 서로 ‘우리’가 되어 어둠과 소음을 견딘다. 결국 쓰레기차에 따로따로 실려 어디론가 떠나간다. 독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림책의 주제가 이별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한 짝만 남은 이 구두는 기적 같은 인연을 만나서 누군가의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친구로 되살아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편견을 가지고 있다. 반드시 두 짝 구두여야 쓸모가 있다는 것은 신발에 대한 편견이다. 춤을 추는 다리에 대해서나 그네를 탈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행복한 삶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섣부른 잣대로 진단하며 다른 이의 불행을 예견한다. 작가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비판한다. 왼쪽만 남은 파란 구두는 연두색 양말 한 짝과 우리가 되고, 춤추기 좋아하는 리타와 새로운 하나를 이룬다. 완전과 불완전,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이라는 개념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만드는 쉽고도 깊이 있는 철학 그림책이다. 파란 구두의 첫 번째 주인과 두 번째 주인의 방은 다른 듯 닮았다.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비슷한 것과 다른 것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52쪽, 9500원.

김지은 어린이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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