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스크린 인물학 (5)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
유년기 인도에서 홀로 생활
고질적 외로움·결핍 느껴
1975년 발표 ‘보헤미안…’
오페라 가미한 도전적 실험
9주간 1위 이후 밀리언셀러
영화속 ‘라이브…’공연장면
역동적 카메라 워크로 연출
실제 무대처럼 관객 ‘떼창’
예상치 못한 일이다. 영국 록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역대 음악 영화들의 스코어를 모두 경신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이한 일이다.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박스오피스 순위가 떨어졌다가도 다시 정상으로 올라서는 사이클이 개봉 1∼2주 안에 수백만 명을 불러 모으고 점차 상위권에서 멀어져가는 블록버스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러니 ‘보헤미안 랩소디’(감독 브라이언 싱어) 신드롬은 하나의 현상이면서 어떤 징후가 아닐까. 동시대 관객의 욕구, 극장의 미래, 음악 영화 제작 방향 등 다양한 코드가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너무 앞서갔다고? 그럴지도.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봉한 지 30일을 넘긴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퀸의 영화가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이만한 흥행을 점치지 못했던 것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다소 뻔한 전개 때문이었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한 구성만큼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밖의 부분에서 식상한 클리셰들에 기대어 있다. 가령, 프레디 머큐리가 방금 해체된 밴드 ‘스마일’의 멤버,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 앞에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른 후 바로 한팀이 되는 사건이나 프레디가 솔로 음반을 내기로 하면서 멤버와 멀어지는 사건 등은 극적 재미를 위해 창작된 것인데, 그 작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에피소드들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특히, 영화상에서 가장 큰 외적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 퀸 해체의 위기에서부터 프레디가 마음을 돌려 멤버에게 사과한 후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서게 되는 과정은 시간적 배경처럼 정말 1980년대 멜로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뮌헨까지 찾아간 메리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 대해 알리고 출연을 종용한 후 바로 사라지는 장면, 그 직후에 프레디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매니저를 해고하는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와중에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멤버에게 선포하는 설정 또한 과하다는 느낌이 들고, 여기서 나누는 “프레디, 넌 전설이야” “우리가 전설이지” 같은 대화는 민망한 사족(蛇足)처럼 장면과 겉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각본이 전반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이유는 프레디가 자신의 병을 동료들에게 직접 알리는 것처럼, 정보가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유사한 방식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퀸 멤버가 메리, 프레디의 가족과 식사하던 중 전화를 받은 프레디가 EMI에서 퀸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뉴스를 전하는 장면에서도, 프레디와 메리가 약혼한 직후 다른 멤버가 들어와 미국 투어가 잡혔다는 소식을 알리는 장면에서도, 놀라움이나 기쁨의 감정이 충분히 포착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들은 탄성을 내뱉을 타이밍조차 빼앗긴다.
훌륭한 영화들은 자고로, 정보를 가능한 한 이미지 혹은 음악과 음향효과로 전달하고 대사를 가장 마지막에 이용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력은 퀸의 음악에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프레디 머큐리라는 리드 싱어의 길지 않았던 삶에도 적지 않은 공감과 애도를 표한다. 따라서 그의 특별한 생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영화는 먼저, 차별받는 공항 수하물 노동자에서 전 세계가 숭배하는 가수가 된 프레디를 보여준다. 이것은 ‘파로크 불사라’라는 잔지바르에서의 본명을 버리고 ‘프레디 머큐리’로 재탄생하는 것과도 병치된다. 과거를 과감하게 거세시킨 그가 결국 성공하게 되고,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되는 결말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사실 그는 자신의 인종적 뿌리를 부정하고자 했다기보다 동성애가 죄악을 넘어 악마 숭배로 여겨지는 파시족(族) 문화와 종교에 대해 반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프레디는 다시 고향을 찾지 않았고, 그 또한 사후에도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가 1974년 발표한 히트곡, ‘세븐 시스 오브 라이(Seven Seas of Rhye)’의 가사는 어릴 때 여동생과 함께 만든 판타지 동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고향에서의 한 때를 떠올리며 쓴 곡이라는 추측이 많다.
빼어난 아티스트이자 성소수자로서 느끼는 근원적 고독감 또한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프레디는 일곱 살에 인도의 기숙학교로 보내져 혼자 유년기를 보낸 경험이 있다. 메리와 동거를 끝냈음에도 계속 그녀에게 의지하는 모습이나 많은 사람을 초대해 요란스러운 파티를 여는 모습 등에서 그런 그의 고질적인 외로움이 전달된다.
여기에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도 겹쳐진다. 연인으로 시작해서 7년간 실질적 아내로 살았고, 평생 친구로 남기도 했던 메리가 그에게 “자긴 게이야”라고 말한 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사랑했고, 관계도 가졌기 때문에 양성애자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프레디 머큐리’, 다빈치 북스) 어쨌든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프레디의 결핍감, 복합적인 정체성은 그를 고통스럽게도 했지만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그에게 열정과 에너지를 더함으로써 퀸을 최고의 밴드로 만든 추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의 사생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관객들이라 해도 영화의 마지막에서 전 세계인을 행복하게 했던 아티스트가 45세에 맞이한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라이브 에이드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퀸이 1975년 발매한 ‘어 나이트 앳 디 오페라(A Night at the Opera)’ 음반의 싱글로, 프레디 머큐리가 세 곡을 한데 묶은 것이다. 멤버가 미친 듯이 곡을 써대던 이 시기에, 프레디는 그의 숙원대로 오페라 파트가 들어간 곡을 만들었다. 감미로운 아카펠라로 시작해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이 들어오다가 오페라가 등장하고, 다시 하드록이 되는 이 장엄한 6분짜리 노래는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퀸이라는 그룹의 도전적이고도 장난기 가득한 성격이 잘 담겨있는 곡이다.
데뷔 당시 퀸의 음악은 글램록, 하드록, 프로그레시브록 등 다양한 장르 중 하나로 규정짓기 어렵고, 확고한 스타일이 없다는 이유로 평단의 외면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다만 퀸이 그들만의 음악을 했기 때문이었다. 성공적이었던 2집, 3집 음반 다음에 내놓은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만의 정체성을 만들고자 했던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게 해준 노래였다.
이 명곡은 24개의 아날로그 트랙머신을 사용해 여러 파트를 한 번에 덧입히는, 당시로서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녹음되었으며 그렇게 브라이언, 로저, 프레디 셋이서 160인조 합창단의 효과를 만들어냈다. 가사에 등장하는 스카라무슈, 갈릴레오, 피가로, 비엘지밥 등의 이름은 당시부터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각각 네 멤버의 전공이나 성격과 연결된 상징적인 캐릭터라는 견해에 설득력이 있다.
음반업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프레디의 절친한 친구였던 엘턴 존, 심지어 퀸의 베이시스트인 존 디콘까지도 우려를 표했지만, 이 싱글은 영국에서 9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1976년 1월에는 밀리언셀러에 오른다. 그뿐만 아니라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한 후 재발매 되었을 때도 5주간이나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영화 제목이 퀸의 수많은 히트곡 중 ‘보헤미안 랩소디’가 된 것은 세월을 뛰어넘어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는 곡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또한, 영화가 첫 장면부터 절정부로 예고하고 있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첫 곡이기도 했다. 아카펠라 부분은 생략되었지만, 피아노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7만 명의 군중은 열광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퀸의 팬이 아니라도 이 장면에서 전율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다. 실황 영상이 남아있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좀 더 현대적으로, 그리고 영화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카메라는 무대 위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군중의 반응도 가까이에서 잡아내 중간중간 삽입시킨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작과 표정을 정교하게 복제해낸 라미 말렉 덕분에 이 신은 1985년 7월 13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것 같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 속 다른 공연 장면들도 화려하지만, 15분간의 라이브 에이드 신은 스크린 X, 스크린 MX 등 특화된 상영관에 존재감을 부여했고, 싱 얼롱 상영붐을 일으켰으며, N차 관람을 확산시키는 등 극장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배급 채널의 다양화로 인해 경직되어 있는 극장 업계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록키 호러 픽처 쇼’(짐 셔먼, 1975)가 극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것처럼, ‘보헤미안 랩소디’도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생전에 프레디 머큐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이 나를 노래도 잘하고, 무대 공연도 잘 해내는 사람으로 생각하길 바란다. 사람들이 퀸의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한껏 흥에 겨워 돌아가면 좋겠다. 좋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순수한 현실도피가 되었으면 한다.”(‘프레디 머큐리’, 뮤진트리) 이런 그의 바람은 1985년에 그랬듯, 2018년에도 완벽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문예지‘쿨투라’편집위원·‘윤성은의 스크린뮤직’ 팟캐스트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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