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영장담당판사에 어필하려
심사당일 수백쪽 추가의견서
사실상 ‘꼼수’ 아니냐 지적

열람·등사 기회도 안주어져
피고인들 방어권 보장 안돼
“의견서 적시제출 규정 필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구속영장청구서에서 정작 ‘구속이 필요한 사유’에 대한 설명은 1페이지가 안 된다면, 피의자 입장에서 제대로 된 방어가 가능할까. 검찰은 구체적인 구속필요사유에 대해서는 영장심사 당일, 판사만 볼 수 있는 의견서로 많게는 수백 페이지를 적어낸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구속 전 피의자에게 ‘법관 대면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도입된 구속영장심사 제도가 모호한 규정 등으로 인해 검찰의 수사 악행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뤄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는 총 220여 쪽에 달했지만, 그 가운데 증거인멸 염려 등 구속필요사유에 대한 검찰 측 설명은 1쪽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혐의 등 범죄사실에 대한 설명들로 채워졌다. 6일 구속영장심사를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의 경우 구속영장청구서 160여 쪽 가운데 구속필요사유에 대한 설명은 1쪽도 채 되지 않는, 3분의 2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작 심사 당일 검찰이 수백 쪽에 달하는 구속필요사유에 대한 추가 의견서를 제출한다는 점이다. 영장심사는 단 한 번으로 끝난다.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통상의 형사공판에서는 의견서에 대해 열람·등사 기회가 주어져 피고인의 방어권이 보장된다. 그러나 하루 만에 끝나는 영장심사는 다르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판 도중에 추가 의견서에 대해 열람 기회가 당연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검찰 측의 추가 의견에 대해 반박할 수도 없이 영장심사는 그대로 끝나곤 하는 게 영장심사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형사소송규칙 제93조·제95조의2 등에 따르면 구속영장청구서에는 범죄사실 요지와 구속필요사유를 기재하도록 돼 있지만,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는지, 제출 시기는 언제까지여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시적인 설명은 없다 보니 검찰이 한 번에 끝나는 영장심사에서도 이 같은 ‘추가 기습제출’ 꼼수를 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피의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구속필요사유 의견서는 적시에 제출돼야 한다’는 등의 규정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향후 공범 수사 등을 이유로 검찰이 ‘패’를 다 공개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영장판사들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검찰의 추가제출 의견에 대해 피의자 측에 최대한 방어권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간혹 영장심사 중에 ‘검찰에서 의견서를 추가로 냈는데, 피의자 측에서 검토해보고 반박 의견을 내달라’며 휴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영장판사가 재량권을 충실하게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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