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註) 상·하 / 주희 집주(集註), 정태현 역주(譯註), 전통문화연구회

‘주희풀이’ 학문적 근거 제시
한계 지적… 역자 견해 더해
기존과 다른 시선으로 번역

논어 원문 자의적 해석안해
글귀 고치거나 왜곡은 경계
“새로운 학문적 초석 다져” 評


흔하디 흔한 게 논어(論語)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논어, 차이가 나는 논어가 출간됐다. 1985년 봄, 나는 한문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민족문화추진회(현 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 입학했다. 첫 학기에 정태현 선생으로부터 논어를 배웠는데, 학부시절부터 사서는 암송할 정도로 읽었기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독이 진행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논어와 달라도 너무 다른 강의였기 때문이다.

논어 글귀 맨 앞에 나오는 ‘자왈(子曰)’에 대한 풀이부터 달랐다. 선생은 이 ‘자왈’을 ‘자께서 말씀하셨다’로 옮겼는데 이는 내가 익히 들었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따위와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게 무슨 큰 차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 ‘공자’ ‘공부자(孔夫子)’는 고유명사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품고 있는 뜻이 다르다는 점에서 같은 어휘가 아니다. 마치 ‘태백성’과 ‘계명성’이 모두 금성이지만 태백성은 가장 밝은 별이라는 뜻을 지닌 초저녁 금성이고, 계명성은 곧 날이 밝아올 즈음에 빛나는 새벽의 금성이어서 품고 있는 뜻이 다른 것과 같다. 어휘의 차이를 예민하게 느끼고 번역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장구한 주석의 역사를 충분히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정태현 역 ‘논어집주’는 바로 이런 점에서 새롭게 번역된 논어이자 차이가 분명한 논어다. 여기서 차이란 기존 ‘논어집주’ 번역서와 다른 점을 말하기도 하지만 주희(朱熹) ‘논어집주’가 어떤 점에서 이전과 이후 주석과 차이가 있는지 알게 해준다는 점을 동시에 가리킨다.

일례로 ‘학이’편 8장 ‘무우불여기자(無友不如己者)’를 ‘나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라’고 옮겼는데 이는 주희의 집주를 충실하게 번역한 것. 그런데 이 책은 구설(舊說·주희 이전 해설)을 달아 주희가 실은 형병(邢昺)의 ‘논어주소’에 근거했음을 밝히고, 이어 이설(異說·주희와 다른 해설)을 두어 주희의 견해와 달리 ‘나와 같지 않은 자를 벗하지 말라’라는 뜻으로 풀이한 청나라 황식삼(黃式三)의 견해를 소개하였다. 더 나아가 역자 자신의 견해를 붙여 유력한 견해에 대한 역자의 의견을 밝혔다. 주희 풀이의 학문적 근거와 함께 주희의 한계를 아울러 알게 해준 새로운 번역인 것이다.

역자는 결코 논어 원문이나 주희의 풀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전의 글귀를 함부로 고치거나 왜곡하는 일을 크게 경계했다. 예를 들어 ‘이인’편 5장의 풀이 중에서 원문의 ‘득지(得之)’를 ‘거지(去之)’로 고쳐서 풀이하는 20세기 중국의 학자 양백준(楊伯峻)의 주장을 유력한 견해로 소개하면서도 원문을 바꾸는 견해는 결코 따를 수 없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학자들이 만약 모두 제 입맛에 맞게 경문의 글자를 고친다면 세상에 온전한 경(經)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귀담아 들을 만한 경계가 아닐 수 없다.

전통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주희의 ‘논어집주’는 단순한 주석서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이해하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대다수의 지식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자가 틀렸을 수 있다’며 독창적인 학풍을 열었던 율곡 이이조차도 ‘먼저 주자를 배운 뒤라야 공맹을 배울 수 있다(先學朱子 然後可學孔孟)’고 했다. 주자 해석과 다른 주장을 해 끝내 사문난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은 윤휴의 고전 해석도 실은 주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정도로 주희의 그림자는 깊고 진했다.

이 책은 우리의 학문전통에 충실한 번역서다. 하지만 주희의 견해를 충실하게 옮기는 데 머물지 않고 ‘논어집주’가 어떤 점에서 기존의 주석을 넘어섰는지 또 어떤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 그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단순히 새로운 논어 번역서 한 권이 나온 것이 아니라 장구한 주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적 초석을 놓기 위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주희를 모르고 주희를 비판할 수 없다. 또 주희를 넘어서는 일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주희를 알기 위해서는 주희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주희의 한계를 밝혀내기는커녕 주희의 견해가 왜 옳은지도 모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주희 이전의 논어와 주희 이후의 논어가 모두 보인다. 널리 읽혀서 우리의 논어 이해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상권 469쪽, 하권 394쪽, 각 2만2000원.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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