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상이 도화선… 자동차 의존도 큰 서민 직격탄
국민 공감대 못얻은 조세정책에 대한 ‘저항운동’ 성격도

‘기후변화 대처’ 탄소稅 계획에
“대통령, 세계의 끝 염려하지만
우린 당장 이달의 끝을 걱정”
4차 집회까지 수십만명 저항

마크롱 결국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폐지’는 철회 않기로
“民心 못읽고 사태 수습 급급”
5차시위 여부 세계 이목쏠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내년 230주년을 맞는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1789년, 프랑스 민중은 목놓아 외쳤다. 이들이 부르짖는 ‘빵’은 사전적 의미와 달랐다. 전체 인구의 2%도 되지 않지만 농지의 40%를 성직자·귀족들이 차지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군주제 폐지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산물이었다.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 역시 단순한 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가 아니다. 노란 조끼 시위는 기후변화를 내세운 글로벌리스트들의 고담준론과 미래성장을 위한 구조조정 피로감에 대한 반발이라는 복합·다면적 요인을 안고 있다.

저널리스트 기고가 폴린 보크는 르몽드지를 통해 지난 7일 시위참가자 마르크 머레이의 발언을 인용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세계의 끝을 염려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달의 끝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 정부는 당장 유류세 인상을 통한 기후변화 대처의 이상적 정책을 추구하지만 정작 일반 국민은 먹고살기 바쁘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 양상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10일 급히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지만 역시 국민의 마음을 읽기보다 사태 수습에만 급급하다는 평가다.

◇‘마지막 지푸라기’ 유류세=11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1월 17일부터 프랑스 전역에서 들끓고 있는 노란 조끼 시위는 10월 중순 마크롱 정부가 유류세 인상안을 발표하며 촉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이후 글로벌 기후변화 대처에 앞장서 온 마크롱 대통령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문제는 자동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지방 소도시 주민들이었다. 농기계를 이용하는 농부나 장거리 운전으로 출퇴근하는 소시민들에게 유류세 인상은 곧 삶에 직격탄을 맞는 것이었다. NBC는 “유류세 인상은 ‘마지막 지푸라기(last straw·인내의 최후 한계)’를 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이들은 운전자를 상징하는 노란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사고에 대비해 차에 의무적으로 노란 조끼를 비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1차 시위에만 29만여 명이 모였고 2차 집회 16만6000여 명, 3차 집회 13만6000여 명이 각각 집결했다. 참여 인원은 줄었지만 시위 양상이 폭력적으로 변하며 4명이 숨지고 부상자도 급증했다. 지난 5일 정부가 유류세 인상안을 철회했지만 8일 4차 집회에는 12만5000여 명이 대입제도 개편, 부유세 폐지 철회 등을 주장하며 마크롱 정부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시위에서는 경찰관 17명을 포함한 135명이 다쳤고 1000여 명이 체포됐다.

마크롱 행정부가 추진한 유류세 인상의 가장 큰 문제는 조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류세는 실질적으로 ‘탄소세’에 해당하지만 프랑스의 탄소배출량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 데다 부과 대상이 자동차에 몰려 시민들에게 세금 인상의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프랑스의 2014년 기준 국민 1인당 탄소배출량이 이웃 독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전체 탄소 배출의 40%가 자동차에서 발생해 독일(21%)의 2배에 가깝다며 배기가스 감축을 1차 목표로 삼았는데 반대 측에서는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 산업구조 특성상 화력발전 비중이 높은 독일보다 자동차 배기가스 비중이 큰 것뿐이란 반론이 나오고 있다. 2016년 프랑스 탄소배출량은 글로벌 전체 탄소배출량의 1%에 살짝 못 미치고 도로 운송 관련 탄소배출량 비중은 이보다 더 낮은 0.4%다.

◇‘부자 우선주의’ 지적도=특히 시민들의 저항이 커진 것은 정부의 세금 인상 부담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몰렸기 때문이다. 유류세는 대표적 역진세로 가난할수록 부담이 크다. 2010년 기준 프랑스의 월 소득 800유로 가구 에너지 지출 비중은 14%로 월 소득 5500유로인 가구(5%)의 3배 가까운 수치다. 유류세를 올릴수록 격차는 더 커진다. 특히 파리 등 대도시보다 대중교통 시설이 미비한 지방일수록 자동차 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르몽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파리 시내 거주자의 자가용 보유 비율은 59.7%에 불과하지만, 농촌 지역의 자가용 보유비율은 92.9%에 이른다.

이번 유류세 인상이 휘발유보다 경유에 집중된 것도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을 부채질했다. 한때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라며 경유 사용을 장려했지만 최근엔 더 많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올해 경유 유류세를 23% 인상하는 대신 휘발유 유류세는 15%만 인상해 형평성 논란을 낳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탄소세는 이론적으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효율적 방안으로 여겨졌지만 서민 생활비를 인상하고 경제를 저해할 만큼 가치 있는지는 아직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WSJ는 또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이 적은 나라라는 점에서 마크롱 정부의 반(反) 탄소 정책이 더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마크롱 행정부는 기업이나 부자들에 대한 세금은 인하 정책을 추진해 서민층의 불만을 더욱 부추겼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위 ‘부유세’를 부동산 중심으로 축소 개편하고 요트나 슈퍼카 등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부자를 겨냥한 감세로 프랑스 세수가 연간 32억 유로 정도 줄어들었는데, 독일보다 실업률이 2배 높고 경제성장률이 2%도 안 되는 상황에서 유류세를 인상해 서민 부담을 가중하려는 조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일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최저임금을 월 2000유로(약 12만8000원) 인상하고 저소득 은퇴자의 사회보장기여금(CSG) 인상안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유세 폐지 주장은 거부했다.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읽는 데 실패한 만큼 5차 노란 조끼 시위에 전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김현아·박준우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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