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교토 아라시야마 가쓰라강의 나룻배, 오사카 아베노 하루카쓰 빌딩의 테라스 레스토랑, 오사카 우메다 주변 쇼핑가.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교토 아라시야마 가쓰라강의 나룻배, 오사카 아베노 하루카쓰 빌딩의 테라스 레스토랑, 오사카 우메다 주변 쇼핑가.

내 취향대로 즐기는 연말연시 간사이 여행

간사이는 ‘넘치는 곳’이다. 일본의 부엌이라는 오사카엔 먹거리들이, 교토엔 절을 비롯한 전통의 미가, 그리고 고베엔 서구의 멋이… 개성 강한 볼거리·먹거리·살거리가 넘쳐난다. 그래서일까. 간사이는 최근 3년 연속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로 꼽혔다. 그만큼 친숙한 곳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길을 잃기도 쉬운 여행지다. 공식처럼 판에 박힌 일반적인 스케줄을 따르다 보면 간사이의 매력을 제대로 맛볼 새도 없이 ‘그저 발도장 한번 찍고 가는’ 여행지로 전락하기 마련. 모든 여행은 나의 욕구를 아는 데서 시작된다. 쳇바퀴 같은 도심에서의 일상탈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연과 함께하는 힐링 여행이 필요하다. ‘섹스 앤 더 시티’처럼 화려한 싱글의 밤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쇼핑 여행을 추천한다. 반짝이는 야경을 보며 도심의 낭만을 즐기고 싶은 사람도 있겠다. 오사카·교토·고베의 주요 관광 스폿들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이제 내게 딱 맞는 간사이 여행을 계획해 보는 건 어떨까. 태풍에 침수된 간사이 공항은 이미 옛일이다. 아직도 공항 곳곳에 공사하는 모습이 눈에 띄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설들이 정상 가동 중이고 유조선과 충돌했던 연락교는 이미 복구돼 리무진 버스가 다니고 있다. 한파가 몰아닥친 한반도와는 달리 아직 가을과 겨울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간사이로 간다.

나룻배·인력거 타고…
‘과거’ 속으로…


대부분 교토여행은 뚜벅이 여행의 한계를 경험케 한다. 유적과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곳이 대부분 그렇지만 버스나 전철로 이동하고 내리고 둘러보는 내내 다리는 지치고 발은 부르트게 마련. 내 발이 아닌 다른 발을 통해 둘러보는 여행은 어떨까.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 아라시야마에서 나룻배에 올랐다. 사공이 저어주는 노의 삐걱대는 소리가 한가로운 바람에 실려 귀를 간지럽힌다. ‘교토의 바람이 이렇게 좋았구나’… ‘미세먼지가 없는 햇살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지’… 배에 내 몸을 맡긴 채 감각을 깨우다 보면 아등바등 종종거리며 바쁘게 살았던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수상 매점에서 산 따끈한 오뎅과 사케 한잔, 혹은 커피 한잔을 곁들이면 비로소 오감만족. 느리게 흐르는 강물 위에서 날서고 긴장됐던 일상의 고삐를 풀어내고 나니 내 마음도 조금 순해지는 느낌이다.

배에서 내린 후엔 인력거다. 힘 좋은 인력거꾼이 이끄는 대로 가쓰라강을 시원하게 내달린 뒤 아기자기한 상점가를 지나 치쿠린(대나무숲)으로 들어간다. 쭉쭉 뻗은 대나무 숲을 인력거로 누비는 기분은 상쾌하다. 어린 시절 아빠가 태워주던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기분이 이랬을까. 뚜벅이 여행이 아닌 탈것 여행은 1분1초 앞만 보고 내달렸던 ‘직진의 시선’을 바꿔준다.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행복했던 ‘그때 그 순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여유없이 버둥대던 발을 잠시 멈추니, 포근하고 따스했던 과거의 한때가 눈앞에 펼쳐진다.

화려한 쇼핑가…
‘현재’를 탐닉하라


단풍과 벚꽃이 없는 겨울철 간사이 여행의 백미는 ‘쇼핑’이다. 옷·가방·모자뿐만 아니라 주방용품·디저트·인테리어 제품과 디저트·각종 소스 등 식료품까지 손재주 좋은 일본인들이 만든, 여심을 홀리는 ‘잇템’들이 그득하다. 지하로 다니다간 미로에 갇히기 십상인 우메다역을 중심으로 각종 쇼핑몰이 밀집해 있다. 잘못하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지만 오히려 잠시 길을 잃겠다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돌아보는 것이 진정한 ‘쇼퍼의 자세’다.

아이가 있다면 피카추·무민·키티·미피 등 꼬마들을 위한 각종 캐릭터숍과 학생용 문구숍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도쿄의 아키하바라에 이은 두 번째 성지 ‘덴덴타운’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개념 서점 ‘빌리지 뱅가드’나 ‘쓰타야 서점’에서 책냄새를 맡으며 책과 아트·라이프 그리고 스타벅스의 ‘신개념 컬래버레이션’을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일본에서 빼놓고 갈 수 없는 드러그스토어 ‘돈키호테’는 필수코스, 24시간 운영이다 보니 밤늦게 들러도 된다. 얽히고설킨 진열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렴한 실속템들이 많아 5만 원 혹은 10만 원으로 한 아름 물건을 안아올 수 있는 ‘탕진잼’을 누릴 수 있다.

쇼핑 후엔 무조건 ‘나마비루(생맥주)’다. 여기에 방금 튀겨져 나온 구시카쓰 몇 점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문어튀김을 질겅질겅 씹고 있노라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음미하며 집어 삼키고 있는 기분이 든다.

환상적인 야경 위로…
‘미래’가 흐른다


‘글리코상’으로 대표되는 도톤보리의 야경이 식상하다면 ‘아베노 하루카쓰’를 추천한다. 개장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상 빌딩’으로 일본 내에서는 도쿄 스카이트리 다음으로 높은 300m 건물이다. 도쿄 타워의 타워 부분을 제외하면 순수 빌딩 높이로는 최고라고 자랑한다.

일본 기업인 긴테쓰 그룹에서 지은 빌딩(공식 소유주는 아베노바시 터미널)으로 내부에는 긴테쓰 백화점·오피스·미술관·호텔·전망대가 있다. 123층에 555m를 자랑하는 제2롯데월드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진이 많은 일본임을 고려하면 굉장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건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반짝이는 도시의 네온사인, 빌딩 아래로 지나다니는 긴테쓰 전철들과 도로 위 빼곡히 박힌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내일을 꿈꾸는 자들의 똘망이는 눈빛인듯, 반짝이는 구슬땀인듯, 보석처럼 영롱하게 도심을 수놓고 있다.

58층 테라스 레스토랑에서는 고타쓰(일본에서 쓰는 온열기구로 나무로 만든 밥상에 이불이나 담요를 덮은 것)에 앉아 야경을 보며 식사까지 할 수 있는 ‘가코무 고타쓰’ 행사가 진행 중이다. 300m 펜트하우스의 따끈한 안방에 앉아 사케 한잔에 따끈한 오뎅을 먹으면서 야경을 내려다보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같은 층 중심에는 높이 16m의 트윈타워 벽이 있는데 여기에 매핑 프로젝션으로 영상을 쏘아올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60층 전망대에서는 유리창에 빔 프로젝트를 쏘아 음악과 함께 영상이 흐르는 ‘시티라이트 판타지아’가 진행된다. 고래상어·사슴·어린왕자·미래도시의 모습까지 3D 입체영상으로 등장하는 꿈결 같은 쇼다. 멋진 도심 야경 위에 흐르는 신비롭고 우아한 영상은 색다른 경험. 한 해를 흘려보내는 세밑에 뭔가 가슴 뛰고 화려한 한 해가 내 앞에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연인과 함께 이런 곳에서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곳에서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면 다시 한 번 더 힘내서 달려보고 싶은 ‘일상의 느낌표’를 얻어갈 수 있다.

TIP

◇ 한큐한신패스 = 간사이를 여행할 때는 교통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비용도 저렴하다. 오사카 주유패스나 간사이 스루패스 등 여러 가지 교통권들이 있지만 주요 관광지를 다 둘러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은 여행자라면 한큐한신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오사카 주유패스는 1일권 2500엔·2일권 3300엔, 간사이 스루패스는 2일권 4000엔·3일권 5200엔이다. 여기엔 주요시설 입장할인 혜택도 있어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큐한신패스는 내년 3월 31일까지 할인행사가 진행 중이라 교토에 다녀올 수 있는 한큐패스 1일권을 700엔에, 고베에 다녀올 수 있는 한신패스 1일권을 500엔에 구입할 수 있다.

글·사진 = 박송이 기자 song2@munhwa.com
박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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