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한 이후 본격적인 수출 주도 경제성장을 추진했던 1980∼1990년대에 우리 수출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선진국의 규제 문턱이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품질 인증을 획득해야만 이들 큰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고, 그나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삼성, LG 등 대기업은 물론 대다수 중소기업이 밤을 새워가며 까다로운 선진국의 시험 기준 통과에 목을 맸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어느덧 무역 규모 1조 달러라는 세계 7위의 수출대국으로 성장한 지금, 우리는 선진국이 아닌 개도국이 쳐놓은 기술 규제망에 수출의 발목을 잡히고 있다. 선진국 시장의 정체와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몰린 우리 수출기업들이 동남아·중동·중남에서 새로운 수출 주력 시장을 개척하고 잠시 숨을 돌리기도 전에, 개도국들이 선진국의 규제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면서 과거 선진국의 행태를 그대로 모방해 몇 배나 더 촘촘한 규제망으로 우리 기업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세계무역기구(WTO) 164개 회원국이 신규 통보한 기술 규제 1793건 중 84%인 1506건이 개도국이 도입한 것들이다. 여기에 미국·중국 등 주요국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의 횡포가 더해져 앞으로 개도국들의 기술 규제 움직임은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우리 수출기업들도 더는 개도국 시장을 만만하게 볼 수 없게 됐다. 개도국 시장으로 제품을 수출하려는 기업들은 그 나라에 어떤 종류의 시험·인증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이들 규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사전에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는 수건 한 장 팔 수 없는 시대다.
이에, 정부는 외국의 각종 불합리한 기술 규제에 대응해 WTO, 무역기술장벽(TBT) 위원회 등 협상 채널을 활용, 외국 정부와 양자 또는 다자 협상을 벌여 불합리한 무역 장벽을 해소하는 한편, 우리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국가별 규제 내용을 사전에 파악, 분석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시험·인증 분야의 전문가가 수출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해외 규제로 인한 애로사항을 듣고 대응 방안을 상담하고 필요하면 해외 인증 취득 등의 정책 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개도국의 무분별한 기술 규제 남발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개도국들과의 기술 규제 협력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유럽연합(EU)과는 수년 전부터 정부 간 규제 협력 채널을 가동하고 있고, 콜롬비아에서는 전기전자시험소를 공동으로 개소했으며,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는 우리나라의 법정 계량제도 도입을 지원하는 등 한국형 표준인증 시스템 전수 사업도 벌이고 있다.
중동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7개국의 표준화 기구인 걸프표준기구(GSO)와는 지난 연초부터 규제 협상을 해 앞으로 GSO 회원국이 신규 도입하는 전기전자·화장품·식품 등의 규제에 우리 기업 또는 시험 인증기관이 참여해 규제 형성에 기여하고, 관련 시험성적서 및 인증서 발행 등을 우선적으로 대행할 수 있도록 하는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세계 시장의 블루오션은, 찾아가기만 하면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거나 별다른 노력 없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기업 스스로가 철저한 사전 준비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과 외교적인 노력이 더해졌을 때 그 보상으로 주어지는 시장인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힘과 지혜를 모아 해외 기술 규제 장벽 너머의 블루오션을 우리의 경제 영토로 만들어 가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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