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밥 한번 먹자”는 말은 “터놓고 대화하자”는 것과 동의어다. 특히 정치인이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소통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 정치’라는 말이 있다. 국회가 들어선 여의도에 온갖 종류의 식당이 즐비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부 인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밥을 함께 먹은 건 공개 일정상으로는 지난달 21일 국정과제위원회 및 대통령자문기구 오찬 간담회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23일째 유사 일정이 없다.

문 대통령의 ‘혼밥’ 습관은 소문이 났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얼마 전 “대통령이 요새 혼자 밥을 먹는다”라고 했을 때 청와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2일 밥 자리를 함께한 수도권 출신의 여당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과도 만난 지가 오래됐다. 거의 안 만나시는 것 같더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칼국수 회동이라는 자신만의 식사 정치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김대중 정부 출입기자 당시 청와대 영빈관이 연일 대통령으로부터 초청받은 밥 손님들로 꽉 찼던 게 기억난다. 불통의 대명사처럼 된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3년 2월 25일 취임한 뒤 두 달 만인 그해 4월 24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 오찬을 필두로 정치부장단 만찬(5월 15일), 출입기자단 오찬(5월 31일), 논설실장 오찬(7월 10일) 간담회를 이어갔다. 문 대통령의 불통 행보는 갈수록 심해져 해외 순방 때 이동 중인 공군 1호기 간담회에서 “국내 문제는 질문받지 않겠다”고 할 정도가 됐다.

대통령의 불통은 야당의 극단적인 반발을 부른다. 지금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면서 단식 중이다. 혼밥과 단식, 둘 다 정상성과는 거리가 멀다. 생존하기 위해 누구는 혼밥을 하고 누구는 단식을 벌이는 모습은 우리 정치판의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식사는 행위자의 복수(複數)성이 담보돼야 맛도 나고 의미도 있는 법이다. 소시민의 혼밥은 때로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대통령의 그건 그 자체로 소통 부재를 상징한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의 단식은 대통령을 향해 야당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소통을 복원하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손 대표는 각오를 단단히 다진 것 같다. 단식 6일째인 11일 오후 만난 그는 “오늘부터는 힘이 좀 많이 드네…하지만 결론을 봐야지”라고 말했다. 70을 넘은 나이에 단식농성장 앞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초겨울 찬바람을 맞기가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충 시늉만 하고 넘어갈 생각이 없다. 국회 앞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농민들의 ‘밥 한 공기 300원 쟁취’ 투쟁이 한창이다. 뭔가 꼬여도 한참 꼬였다. 누군가 매듭을 풀어야 한다. 어차피 제도적으로나 정치문화적으로 대통령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선거제도 개혁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두 야당 대표의 단식을 풀도록 설득하면 어떨까. 그리고 청와대로 여야 지도부를 초청해 함께 따스한 밥을 나누면서 정국 해법을 모색하면 금상첨화겠다. 그게 명분에도 맞는다.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 개혁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귀가 아프게 강조했던 대표 공약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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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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