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연주자? 악기? 악보? 모두 맞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공연장이다. 작곡가가 악보에 기록해둔 미적 가치들이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도, 연주자의 철학과 감각이 악기를 타고 청중의 마음에 가닿는 것도 모두 적절한 환경을 갖춘 연주회장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음악을 디지털 매체를 통해 감상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랜 일이지만, 클래식 음악계에서만큼은 여전히 현장성이 중요하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상징적 공간인 금호아트홀이 내년 5월 1일부로 문을 닫는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측은 지난 11일 홈페이지를 통해 “건물의 제반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운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이치자산운용이 소유하고 있는 종로구 새문안길 75번지 대우건설 빌딩 3층에 위치해 있던 금호아트홀·문호아트홀 공간의 임대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기존 사업은 2015년 10월에 개관한 금호아트홀 연세(사진)로 옮겨 지속한다.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는 고향 같은 공간이자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랜드마크와 다름없는 금호아트홀의 폐관 소식에 많은 이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390석 규모의 금호아트홀(이사장 박삼구)은 2000년에 완공해 문을 열었다.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정식 개관 전부터 클래식 음악 불모지 같았던 한국 음악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사업은 특히 영재 발굴과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에 집중됐다. 금호영재·영아티스트·영체임버 콘서트 시리즈를 기획해 오디션을 개최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은 스타가 된 피아니스트 김선욱·김태형·손열음·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임지영 등도 전부 이 무대를 거쳐 갔다. 고 박성용 회장과 각별했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나에 대해 나보다 더 큰 꿈을 그리는 모습이 때로는 낯설기도 했다”며 그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드러낸 바 있다.
악기은행을 통해 값비싼 고악기를 무상 임대하고, 무대 매너나 악기관리법을 지도하는 등의 사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가 세계무대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영재 지원 사업 외에도 금호아트홀은 2007년부터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를 기획해 10년이 넘는 기간에 한 해도 쉬지 않고 관객과 만나왔다. 피아니스트 엘리소 비르살라제,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 등 국내에서 연주를 듣기 힘든 명망 있는 음악가를 초청하거나, 상주음악가 제도를 통해 한 해 동안 젊은 음악가의 음악 세계를 심층적으로 소개하는 등 신뢰감을 쌓았다. 그 덕에 ‘광화문의 목요일 저녁’을 정기적으로 찾는 유료 관객은 점점 늘어났다.
한편, 서대문구 신촌에 위치한 금호아트홀 연세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100억 원을 출자해 만든 실내악 전용홀로 개관 당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기존에 있던 금호아트홀과 규모나 기획 면에서 큰 차별성이 없고, 소극적으로 운영된 탓에 별 성과가 없던 게 사실이다. 연세대 캠퍼스 내에 위치한 만큼 일반 관객의 접근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으나, 잔향 시간이나 음성 명료도 면에서 탁월한 음향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조명 설계나 로비 구조 등 전문가들로부터 최적화된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 기획이 뒷받침된다면 음악 애호가들의 아쉬움을 달랠 만한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의 탄생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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