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26)‘투기-공유’ 두 얼굴의 비트코인

롤러코스터 급등락 가상화폐
투기대상 전락속 해킹에 노출

운영방식인 블록체인 기술은
국제거래 방식의 혁신 불러와
포용적 금융 ‘희망’도 제시해


#1. 서브 프라임 위기를 맞아 납세자가 부실 금융회사를 구제하는 정부 조치에 사회적 분노가 치솟았던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의 저자는 신뢰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거래시스템에 관한 논문을 공개했다. 이듬해 초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왔다. 사토시가 채굴해 비트코인 블록이 최초로 생성(블록 넘버 0)됐고 보상으로 50비트코인을 받았다.

이후 또 다른 가상화폐들이 나오고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가상화폐 시장은 작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었다. 최초로 거래시장이 들어선 2010년 1달러가 채 안 됐던 비트코인은 작년 말 2만 달러에 육박했다. 그러나 연초 정점에 올랐던 가상화폐 시장은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코인마켓캡닷컴(www.coinmarketcap.com)에 따르면 한때 8000억 달러에 달했던 가상화폐의 시장가치는 현재 1000억 달러 남짓하다.

가상화폐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당초 사토시가 주장했듯이 가상화폐가 신뢰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거래시스템이 되기에는 흠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돈을 은행에 맡기는 것은 은행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이 신뢰는 국가권력과 금융회사의 공신력에서 나온다. 한편 가상화폐의 신뢰는 시스템을 원활히 작동하는 기술에서 비롯한다.(김경수의 글로벌경제이야기 9 참조) 그러나 기술발전이 지속되는 한 완벽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기술이 창조한 가상화폐는 미래 기술에 의해 도전받을 수밖에 없으며 해킹 등 보안 사고에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별다른 규제 없이 전 세계 1만6000곳 이상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는 인위적인 가격 조작의 여지가 많다. 거래소가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는 일은 이젠 별 뉴스거리도 아니다. 비록 가상화폐의 기술은 신뢰한다고 해도 그 시장까지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권(分權)은 가상화폐가 창조된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분권은 거래소 해킹과 같은 사고가 일어나거나 거래량이 폭증해 블록체인 프로그램을 교체 또는 업그레이드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를 누군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블록체인의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는 대부분 공개된다. 네트워크가 신뢰와 안전을 담보하고 협업을 통해 그 기능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가상화폐가 폭등하자 블록체인을 운영하는 커뮤니티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고 문제에 부닥칠 때 협업 대신 가상화폐는 여러 개로 쪼개져 제 갈 길을 갔다.

비트코인은 주조권을 독점하는 국가 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그 공급량이 제한됐다.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상화폐의 가치가 오르자 그 공급도 늘어나 연초 대비 600개 이상이 증가, 현재 2000개가 넘어섰다. 희소성은 더 이상 가상화폐의 미덕이 아니다.


#2. 지금 가상화폐 시장은 닷컴 버블이 꺼졌던 2000년대 초를 연상하게 한다. 당시 나스닥에 상장된 많은 기술기업이 도산했다. 그러나 축적된 정보통신기술(ICT)은 후에 기술혁명의 밑거름이 됐다. 마찬가지로 가상화폐가 운영되는 블록체인 기술은 다른 영역에서도 활용 가능하게 된 것이다.

모든 거래가 순서대로 기록되고 그 정보를 사용자 간 공유해 삭제, 위조, 변조할 수 없는 블록체인 기술은 국가 간 자금 이체에 소요되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결제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중앙집중시스템과 은행과 같은 중개인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철수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영이에게 송금할 때 철수와 영이가 거래하는 국내은행과 미국은행 간 송금에 관련한 정보의 교환이 필요하다. 이 정보는 국제금융통신망(SWIFT)을 통해 표준화된 메시지로 전달되며 송금→송금 확인에 며칠씩 시간이 소요된다. 웨스턴 유니언과 같은 송금전문업체를 이용해도 SWIFT를 경유하는 것은 같고 은행 간 자금 이체보다 시간은 단축되나 대신 수수료가 비싸다. 더욱이 해외 소재 은행 간 외국환매매 시 외환거래에 따르는 외환결제 리스크를 제어하기 위해 외환동시결제시스템(CLS)도 추가로 경유하는 것을 고려하면 얼마나 블록체인 기술이 유용할지 알 수 있다.

물론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가상화폐 규제에 대한 공동규범이 필요하며 해킹 등 각종 사고에 따르는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분권화된 시스템에서 검증에 필요한 연산이 커지기 때문에 대용량 컴퓨터가 필요한 것도 기술적인 장애 요인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변조방지 기능과 정보공유 시스템은 생산공정이 지역별로 분업화되는 공급 사슬망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통상 많은 양의 작업공정 데이터가 공급망 전체에 전달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 그 결과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 작업이 지연되고 물류비용이 높아지는 문제가 일어난다. 블록체인 기술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생산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특히 여러 국가에서 생산공정이 일어나는 글로벌가치사슬(GVC)의 경우 최종 제품의 생산국을 판별하는 원산지 규정은 자유무역협정국 사이에 중요한 분쟁의 대상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변조 방지 기능으로 이를 원천 차단할 길이 열렸다.

싱가포르 중앙은행(MAS)은 11월 싱가포르 거래소·기술기업들과 협력해 서로 다른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토큰화된 자산을 결제하는 지불즉시인도(Delivery vs. Payment, DvP) 시스템을 개발했다. DvP는 금융거래 시 금융자산과 현금의 교환이 동시에 일어나게 함으로써 결제 위험을 제어하는 거래형식이다. 이 시스템의 개발은 MAS가 업계와 협력해 청산과 지급결제를 위한 디지털 분산원장, 즉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Ubin의 일환이다. Ubin은 중앙은행이 발급하는 토큰에 기반해 지금보다 훨씬 더 사용하기 쉽고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으며 시범사업 등 상당한 진전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기술의 또 다른 구성요소인 스마트 계약은 계약의 체결을 쉽게 하고 이행 시 구속력을 높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스마트 계약은 많은 종류의 계약조항을 자체 실행하거나 구속력이 있어 중개비용 없이 거래 당사자가 계약에 명시된 의무를 수행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영이가 중고장터 사이트에서 누군지 모르는 철수와 직거래를 할 때 당초 계약과 다른 물건을 받을 상황을 고민하게 된다. 이 점은 대금을 받지 못할 수 있는 철수도 마찬가지다. 스마트 계약은 사전에 정한 규칙을 두 사람 모두 준수할 때 비로소 거래를 성사하기 때문에 계약불이행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공유경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독일의 스타트업 슬록 잇(Slock.It)은 전기자전거 임대사업을 스마트 계약 기술에 의존한다. AXA는 항공편이 두 시간 이상 지연될 시 스마트 계약을 통해 고객이 별도 보상을 청구할 필요 없이 자신의 신용카드로 자동으로 현금을 보상받는 보험상품을 내놓았다. 스마트 계약이 약정된 계약사건이 발생할 때 자동으로 클레임이 작동,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은 보험계약자, 보험사 모두의 비용을 줄일 수단이다.


#3. 블록체인에 기반해 국가 간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인 센티넬 체인(Sentinel Chain, https://sentinel-chain.org)은 지난 4월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크라우드펀딩으로 1440만 달러 규모의 토큰(SENC)을 발행했다.

비즈니스모델은 내년 1분기에 미얀마 정부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 농부들에게 가축을 담보로 여신과 가축보험을 제공하는 포용적 금융을 실천하는 것이다. 미얀마에는 1700만 마리의 소가 있으며 농부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이 사업은 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가축을 소유한 농부, 가축보험을 제공하는 보험회사, 신용을 공급하는 금융회사, 가축에 대한 정보의 접근이 가능하게 된 정부, 수수료 수입을 챙기는 센티넬 체인을 소유한 핀테크회사 InfoCorp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구체적 사업은 다음과 같다(그림). 그 실체와 소유권을 식별하는 디지털 여권을 가축에게 부착하고 디지털 여권에 소장된 데이터는 별도의 블록체인(CrossPay)에 저장, 기록된다. 모든 거래는 스마트폰 앱을 통하며 농촌 지역에서는 은행과 같은 공적금융에 접근이 어렵기 때문에 이 앱은 통장으로도 사용된다. 거래대금의 지급과 결제는 미얀마 화폐(MMK)인 짯(Kyat)과 그 가치가 1대1로 연동된 미얀마에서만 통용하는 토큰(LCT.MMK)을 사용한다.

센티넬 체인의 운영은 모기업 InfoCorp의 자회사 AgTech가 SENC를 담보로 LCT.MMK를 발행하는 방식이다. 이 토큰이 의심 없이 거래되기 위해서는 담보가치를 LCT.MMK 발행액으로 나눈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담보비율이 200%로 설정된다면 MMK의 가치가 상승할 때 담보비율은 200% 이하로 감소한다. 이때 AgTech가 SENC를 담보로 추가로 매입해 200% 담보비율을 유지할 때 사용자가 LCT.MMK와 짯의 가치가 1대1로 유지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 계약이 없었다면 어떤 금융회사도 광활한 농촌 지역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업이 성공해 토큰(LCT.MMK)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1대1의 교환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AgTech는 LCT.MMK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 따라서 담보인 SENC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SENC의 시장가치는 상승한다. 이와 같이 SENC는 다른 가상화폐와 달리 실수요에 기반해 그 가치가 결정되는 구조다.


#4. 다시 생각해봐도 사토시의 비트코인은 분명 경이로운 존재였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초연결사회에서 유통되는 초국가화폐를 실제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청난 성공은 당초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의 탑을 허물고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민주주의 광장을 만들고자 사토시와 같은 개발자들이 추구했던 노력은 좌절되고 대신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도권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곧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다름없으며 가상화폐의 옥석을 가리는 데 큰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당초 가상화폐가 만들어진 취지에 어긋난다. 더욱이 제도권 금융과 중앙은행이 직접 가상화폐를 만들어 유통할 때 거래비용이 크게 줄어 그 효율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때 과연 가상화폐가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지 두고 볼 일이다. (문화일보 12월 5일자 25면 25 회 참조)

한국경제학회장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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