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강상중(왼쪽 사진)과 우치다 타츠루가 처음 만나,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계절 제공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강상중(왼쪽 사진)과 우치다 타츠루가 처음 만나, ‘야만의 시대’를 넘어서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계절 제공

-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우치다 타츠루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日 비판적 지식인 2인의 대담
민주주의 약점에 세계화 결합
혐오로 가득찬 시대정서 통찰

경제적 불평등 심해지면서
‘국민국가’ 개념까지 약해져
내전 등 불안의 세계화 심화

“美 표준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 존중·환대 필요”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內田樹)의 대담집이라니 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악의 시대를 건너는 법’ ‘마음의 힘’ ‘살아야 하는 이유’ 등을 통해 개인적 고통까지도 시대적 통찰로 끌어올리는 재일 한국인 강상중과 무라카미 하루키 마니아인 동시에 무도 공동체 스승이자 문학부터 철학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는 르네상스적 지성인 우치다의 첫 만남이니 궁금할 수밖에.

서로 한 번은 꼭 만나고 싶었다는 이들의 대담은 깊은 지식과 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시대에 대한 거시적인 해석과 미시적 분석을 조화롭게 펼친다. 우치다의 말처럼 ‘진검승부’지만 날 선 대립이 아니라 거의 모든 쟁점에서 의견 일치를 이루며 서로 밀고 끌며 나아간다.

이들의 출범선은 2015년 프랑스의 동시다발 테러다. 전후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 있는 21세기가 왜 극우파, 난민, 내전과 테러라는 야만의 세기가 됐느냐는 것이다. 우치다는 21세기를 전방과 후방, 전시와 평시, 비극과 희극의 구분이 사라진 역사의 분기점으로 봤다.

이들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전후 민주주의 체제의 태생적 약점에서 찾았다. 전후 민주주의 체제가 미국과 유럽의 자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미국의 자유는 인디언의 희생을, 프랑스의 자유는 비시 정권의 나치 부역을 외면하고 있다는, 즉 태생적으로 자유와는 거리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국주의의 왜곡도 있다.

여기에 세계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결합해 이제 ‘국민국가’는 종말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프랑스 우익과 미국 트럼프 지지자들의 절규는 국민국가 프랑스와 국민국가 미합중국이 해체되는 중임을 직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시대에 보편적인 정서는 불안과 혐오다. 우리 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불안의 세계화. 그 이유 중 하나는 생활이 점점 향상된다는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적 자본주의가 휩쓸면서 사람들은 평화·성장·풍요가 일체가 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상과 현실이 어긋나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혐오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치다는 이런 세계에서 경제 합리성 측면의 성장을 유지하는 길은 독재밖에 없다고 했다. 이 맥락에서 그는 일본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것을 ‘일본의 싱가포르화’로 표현했다. 부정적 미디어는 없애고, 돈 버는 일과 직결되지 않는 것엔 공적 투입을 끊고, 전 국민을 경제성장이라는 국시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사람들의 ‘지긋지긋하다’는 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지긋지긋한 것을 바꾸는 데만 몰두해 왜 바꿔야 하는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새로운 것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은 인류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를 헤쳐오면서도 화해를 포기하지 않았다며 희망의 가능성을 말한다. 두 지성이 야만의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꼽는 것은 다양한 삶의 공존, 관용과 환대다.

“미국을 표준으로 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 위에 탄 것 같은 총동원 시스템을 멈출 수 있다.”(강상중)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원칙에 의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측은지심이다. 상처받고 헐벗은 살아 있는 인간을 대변했을 때 느끼는 공생의 감각이다.’(우치다)

구체적으로 강상중은 작은 섬 같은 사회들의 리좀적 연결을 꼽았고, 우치다는 상호부조적 공동체를 말했다.

하지만 상호부조적 공동체만의 세계는 원치 않는다. 또 다른 의미에서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라는 미래는 초고속 화폐 경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격렬한 사회와 호혜적 상호보조적 공동체의 공존, 성격이 전혀 다른 다양한 공동체가 각자의 역사적 배경과 지리 조건에 기반해 최선의 모델을 결정하는 사회다. 그것이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이며, 현 체제의 몰락이되 위험하지 않고 희망적인 몰락이다.

다만 2016년 저작으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의 변화를 담지 못했고, 후반부 상당 부분을 일본 사회 분석에 집중해 한국 독자로선 아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대를 품고 미래를 향한 해석은 우리에게 풍부한 해설서이자 예리한 참고서를 제공한다. 304쪽, 1만6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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