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己亥)년이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통과의례처럼 해야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회사는 시무식을 하고요. 개인은 한 해 계획을 결심합니다. 띠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황금 돼지의 해인 올해, 과연 돼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돼지는 대개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동물로 받아들여집니다. 게으르고 뚱뚱한 사람을 돼지에 비유하고요. 수식어에 돼지를 붙이면 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행운과 다복의 동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돼지꿈을 꾸면 횡재를 기대하고,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며 돼지머리를 두고 고사를 지내죠. 아마 돼지처럼 이렇게 평가가 극과 극인 동물은 없어 보이는데요.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등장한 돼지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처럼 인간과 맞설 만큼 똑똑하면서도 탐욕스러운 돼지가 있는 반면, 애니메이션 ‘꼬마 돼지 베이브’(1995)처럼 개 못지않은 ‘양치기’로 성장하는 사랑스러운 돼지도 있습니다.

이문열과 황석영의 소설 속 돼지는 부조리이고 아이러니입니다. 돼지가 상징하는 고정관념을 통해 또 한 번 인간과 사회의 고민을 드러내고 있죠. 이문열의 ‘필론의 돼지’(1980)에선 군 제대 열차 속에서 벌어진 폭력을 배경으로, 사회 부조리에 방관하는 태도를 꼬집습니다. 황석영의 ‘돼지꿈’(2005)에는 역설의 미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물상을 하는 강 씨에게 복날 즈음 공짜로 얻은 죽은 개는 큰 횡재라고 할 수 있죠. 아마 어젯밤 돼지꿈 덕일 겁니다. 하지만 그날은 집 나갔던 딸이 임신해서 돌아오고, 공장에서 일하는 아들이 사고로 전기톱에 손가락을 잘리고 보상금을 타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뭔가 하나를 잃은 대신 보상으로 다른 걸 받은 셈인데요. 강 씨에게 과연 그게 행운이고, 돼지꿈의 효력이었을까요?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붉은 돼지’(1992)는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돼지가 된 남자 파일럿 포르코의 이야기입니다. 포르코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파시즘의 횡포와 전쟁, 살육을 반대하며 돼지로 변해갑니다. 배부른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배고픈 돼지가 되겠다는 것이겠지요. 반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돼지란 동물이 참으로 보통이 아니네요. 올해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가 꿈꾸는 평화와 공존이 가득한 나라에서, 이문열의 필론의 돼지와 달리 사회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며, ‘꼬마 돼지 베이브’처럼 행복한 꿈을 이루며 살고 싶습니다. 설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clark@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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