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소녀는 에이코가 된다. 그들은 일본어로 일본 여성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위안부가 된 ‘나’는 열세 살의 자신을 상실했다.
조센삐라는 이름만 남고 ‘나’는 없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제국-조선인’ 또는 ‘제국-벌레’의 관계이다.
1.
2018년 7월 김숨은 ‘흐르는 편지’의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말을 쓰는 오늘도 한 분이 돌아가셔서 생존자는 이제 스물일곱 분’이라고 기록했다. 이 글을 쓰는 2018년 12월 5일에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시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옥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제 생존자는 스물여섯 분이다.
2.
‘흐르는 편지’에서 ‘나’의 이름은 ‘후유코’이다. 그녀를 찾아온 일본군이 지어준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후유코, 도시코, 모모코, 후미코, 야에, 미쓰코, 요시코, 히후미, 유키코. 이 이름의 주인들은 일본의 어딘가에 살고 있었을까. “혹시나 배 속 아기가 그 여자들 중 하나의 아기가 아닐까”(‘흐르는 편지’, 현대문학, 2018, 126쪽) 싶어서 ‘나’는 강물에 편지를 쓰면서 일본 여자의 이름들을 쓴다. 그 이름들 하나하나에는 일본군들의 불안과 불안을 가장한 파괴적 폭력이 내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의 이름 쓰기 행위는 군인들이 행한 파괴적 폭력을 그들이 상상한 일본 여자들에게 되돌려주는 의미를 띤다. 비록 흐르는 강물에 지워지겠지만 그 이름들은 날 선 부메랑처럼 강물에 베인다.
위안소의 다른 여자들도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위안소의 일본인 주인 할아버지 ‘오지상’이 지어준 이름도 여럿이다. 에이코가 죽으면 새로운 조선 소녀를 데려와 죽은 에이코가 입었던 옷과 이름을 준다. 이제 조선의 소녀는 에이코가 된다. 그리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위안소를 찾는 일본 군인과 위안부들을 성-기계로 전락시킨 오지상은 조선의 소녀들을 일본 여성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의 명명이 과연 누구를 피폭력의 대상으로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석순 언니가 죽었을 때 “땅도 아깝고, 흙도 아깝다”(‘한 명’, 현대문학, 2016, 21쪽)며 변소에 시체를 버릴 때에도, 아래가 너무 심하게 부어 도저히 받아주지를 못하자 “아래를 못으로 찔러버렸”(‘한 명’, 22쪽)을 때에도, 그들은 일본어로 일본 여성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자신들이 과연 누구를 버리고 누구를 찌르는지도 모른 채로.
3.
열세 살의 ‘나’는 동네 구장 공씨가 비단공장에 보내야 한다는 강압으로 기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지만, 이곳 ‘낙원위안소’는 낙원이 아니며 비단공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어느 모내기철 열여섯 살의 김복동 할머니에게는 동네 구장과 반장이 노란 군복을 입은 일본인과 찾아왔다. 그들은 열여섯 살의 김복동을 ‘데이신타이’에 보내야 하니 데려가야 한다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말한다. “데이신타이가 뭔가요?”(‘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현대문학, 2018, 49쪽. 이후 ‘숭고함은~’으로 표기)라고 김복동의 어머니가 물을 때 그들은 군복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사과밭에 놀러 가던 길원옥 할머니는 “공장 가서 일하면 돈도 벌고, 좋은 기술도 배울 수 있을 텐데. 그럼 고생 하나도 안 하고 살 수 있는데.”(‘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현대문학, 2018, 44쪽. 이후 ‘군인이~’로 표기)라는 어떤 아주머니의 권유로 기차를 탔다. 그녀들은 모두 군복을 만들거나 비단, 성냥, 총알, 광목, 고무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아시아 전역의 위안소로 흩어졌다. 밭을 메다가, 목화를 따다가, 동네 우물가에 물 길러 갔다가, 냇가에서 빨래해 오다가 억지로 끌려온 조선의 소녀들은 그렇게 ‘조센삐’(삐는 여성 성기를 의미하는 속어)가 되었다.
그녀들의 평균나이 열예닐곱이었고, 열한 살짜리도 있었다.
도키와(길원옥이 있던 위안소)…… 도키와라는 데였어. 군인들이 표를 가지고 왔어.
만주 가는 줄 모르고 갔어…….
친구들 여럿하고…… 여럿이…… 친구들 얼굴…… 기억 안 나…… 어떤 여자가 우리를 데리고 갔어…… 할머니였어…… 평양역에 여자애들이 많았어…… 내 또래 여자애들…… 나는 평양역에서 기차를 탔어…… 서성리역에도 여자애들이 많았어……. (중략)
위안소 주인 여자도 할머니였어…… 그곳에는 조선 여자들만 있었어…… 한 열댓 명…… 스무 명쯤 될까…… 주인 할머니가 군인만큼 무서웠어…….
거기 간 지 얼마 안 돼서 요코네(성병)에 걸렸어…… 열이 무섭게 나고 사타구니 양쪽이 부어올랐어. 수술을 하면서 양쪽 나팔관을 막아놓았어, 아기가 못 들어서게.(‘군인이~’, 40-41쪽)
불행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가난은 가장 불공평한 방식으로 재난과 위험을 분배한다. 가난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소유한 물질이 적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가장 쉽게 노출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거나 그 상황을 판단할 능력의 부재에 가까운 의미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가난은 위험하다. 흑인인 것은 위험하다”(지그문트 바우만, ‘부수적 피해’, 정일준 옮김, 민음사, 2013, 15쪽)는 말은 여기서도 유효해서 조선인인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조선인이 가난한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그렇게 가난해서 위험에 노출되었던 어린 소녀들은 고향을 떠나 기차를 타고 아시아의 전역으로 ‘배치’되어 일본 군인들의 성욕과 불안을 ‘받는’ 성-기계로 전락했다.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수치와 모욕과 공포에 그녀들의 몸에 처음 다녀간 일본 장교에게 용서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죽는 방법조차 몰라 술과 약을 잔뜩 먹고 망가진 몸으로 군인을 받아야만 하기도 했다.
그렇게 가난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그녀들은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가 오면 이 지옥에서 자신을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엄마를 불렀다.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죄를 지은 것만 같아서 편지에 “저는 비단공장에 와 있어요. 돈 벌어 돌아갈 때까지 몸 건강히 계세요. 답장은 하지 마세요”(김복동)라는 거짓말을 쓰기도 했다. ‘답장은 마세요’라는 문장에 새겨진 죄책감과 서글픔이 아프다. 더러 “어머니가 아파 죽어간다”와 “어머니가 죽었다”(‘한 명’, 129쪽)는 전보가 한 달의 시간 차를 두고 오기도 했다.
정말 운이 좋아 살아 돌아온 ‘한 명’의 그녀가 혹시나 해서 ‘군자’의 고향 집을 찾아갔을 때도 군자의 어머니는 “너도 만주 실공장에 갔었냐?” “우리 군자하고 같이 안 왔냐?” “그럼, 너 혼자 왔냐?”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몰랐으므로. 자신들의 딸이 성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므로. 그녀는 죄책감에 군자의 어머니가 준 보리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한 명’, 17쪽)이었어도 고향의 사람들은 몰랐으므로. 너무 가난해서 너무 무지했으므로. 그래서 동생의 “누나- 빨리 갔다 와!”(‘군인이~’, 45쪽)라는 마지막 인사가 잊히지 않았다.
4.
그녀들을 위안소로 보낸 사람들 중 상당수는 조선인들이었다. 연순 언니는 식모살이하던 교장 선생의 부인이 중국의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기차를 탔다. 그녀의 나이 열두 살이었다. 을숙 언니는 돈을 벌러 대구로 갔다가 어떤 ‘사마귀 난 여자’(‘흐르는 편지’, 75쪽)의 알선으로 낙원위안소로 왔다. 많은 조선인들은 그들의 딸과 같은 나이의 소녀들을 ‘공장’으로 보냈다. 네그리의 말처럼 제국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민족과 국가라는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생존만이 자리 잡아, 당시의 조선은 삶-정치를 내면화한 존재들의 생존 투쟁의 공간이었다.
그러니 지옥의 문은 죗값을 묻지 않고 열린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흐르는 편지’, 26쪽)라고 아무리 자문해보아도 메아리는 없다. 위안소의 그녀들이 ‘전생의 죗값’이라고 자학해보지만, 그 해석이 설명할 수 있는 현실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오게 된 까닭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려 애쓴다. 우리에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인 오지상조차도.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줄 모르는 해금은 자신이 어수룩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한다. 악순 언니는 부모 없는 고아 신세라서, 점순 언니는 자신의 팔자가 사나워서, 끝순은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요시에는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을숙 언니는 직업소개꾼에게 속아서, 애순 언니는 그냥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린다. …… 나는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리려고 애쓴다. 그런데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흐르는 편지’, 52쪽)
우리는 군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시달리려고, 맞아 죽지 않으려고, 라쿠엔(낙원위안소)보다 더 먼 데로 팔려 가지 않으려고, 저마다 터득한 요령대로 애를 쓴다. 우리가 조센삐라는 사실을 잊으려고, 해금은 일본 군인의 애인이 되고, 을숙 언니는 성냥불을 가져가 대면 화르르 불길이 치솟는 독한 중국술을 마신다. 악순 언니는 욕쟁이 싸움닭이 되고, 점순 언니는 아편에 취해 산다. (중략)
나는 조센삐인 걸 잊어버리려 애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잊어버리는 것은 나 자신이다.
결국 조센삐만 남고, 나는 어디로 가버리고 없다.(‘흐르는 편지’, 79-80쪽)
그래서 그녀들은 다시 묻고 싶어진다. 질문은 교체된다. 그때 나에게 왜 그랬어요? 그들은 답할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때는 모두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나 생존이라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온정주의적 시선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스피박은 ‘포스트 식민이성 비판’(태혜숙·박미선 옮김, 갈무리, 2005)에서 서구의 제국주의가 제3세계 여성 하위주체들을 제국의 논리를 강화하는데 이용한 후, 다시 그녀들이 스스로를 주체화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버려진다는 의미로 ‘폐제(廢除·foreclosur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생살여탈권을 기반으로 식민지 소녀들의 삶을 재배치하고, 자신은 은폐시키면서 이웃을 팔아넘긴 조선인들의 배신에 우리의 시선을 고착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거기에 이중적 폐제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앞선 인용문들의 마지막에 쓰인 것처럼 위안부가 된 ‘나’는 열세 살의 자신을 상실했다. 조센삐라는 이름만 남고 ‘나’는 없다. 고향을 떠나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한 일본 군인들을 ‘위안’하는 방식으로 식민지 여성 하위주체들은 제국의 팽창주의에 동원된 후, 어떠한 말로도 자신들을 주체화할 수 없는 존재로 버려진다. 또한 스피박은 제국주의자들에게 토착문명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토착정보원’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확장 논리와 유럽 백인의 주체를 확립하는 ‘대리보충’의 기능을 담당한 후 폐제된다. 조선의 소녀들을 팔아넘긴 조선인들이 이와 다르지 않아서 제국은 결코 그들과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이 이중적 폐제의 상황에 제국주의의 폭력의 논리가 숨어 있다. 사악한 개인이나 억압적인 공권력과 같은 가시적 폭력에만 초점을 맞추게 하는 시도에는 인식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형태의 폭력을 시야에서 감추게 함으로써 문제의 진정한 중심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 징후”(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이현우 외 옮김, 난장이, 2011, 37쪽)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행위자를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가시적인 ‘주관적(subject) 폭력’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이런 인식의 유혹은 지나치게 편리하다. 이러한 인식은 구조적인 배경을 보려는 노력을 은폐시켜 제국주의의 폭력의 논리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 우리가 눈을 돌리는 바로 그 자리가 ‘구조적 폭력’의 위치이다. 일상성의 유지를 위해 작동하는 구조적 폭력은 바로 이 정상적인 상태에 내재되어 있다. 제국주의 국가 권력의 팽창과 유지를 위한 구조적 폭력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조선인-조센삐’의 관계가 아니라 ‘제국-조선인’ 또는 ‘제국-벌레’의 관계이다.
5.
2016년 8월에 발표된 소설 ‘한 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사람만 남은 미래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쓰였다. 자신도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던 할머니(‘그녀’)가 공식적 생존 피해자가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도 피해자요”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내용이다. “그 한 문장을 쓰기까지 70년이 넘게 걸렸다.”(‘한 명’, 236쪽)
그녀는 대부분의 주민이 떠나버린 재개발지구 15번지의 허름한 주택에 살고 있다. 버려진 동네의 창문들은 깨져 있고 대문들은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다. 마치 증언 이전 역사의 기록에 존재하지 않은 위안부들의 존재처럼 그녀는 주민등록도 없다. 옷 수선가게의 주인은 스무 번도 넘는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낳은 자신의 개를 그녀에게 넘기려 한다. 그 개는 그녀에게 위안소 여성들의 삶과 죽음과 버려짐을 연상케 한다. 또한 한 늙은이는 새끼 고양이들을 포획해 양파망에 집어넣고 빈집 대문 기둥에 걸어두었다가 5000원을 받고 판다.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재빠르게 움켜잡는 늙은이의 올무 같은 손과 망에 갇힌 짐승의 질긴 울음소리는 그녀에게 끌려가던 소녀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작품 곳곳에 편재하는 보조적 플롯들은 그녀의 증언과 기억의 의미를 풍부하게 현재화하고 있다.
이와 다른 측면에서 주목할 점은 이 책의 말미에 달린 총 316개의 각주들이다. 거기에는 박두리, 최갑순, 진경팽, 김복동, 김영숙, 정옥순 등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증언 기록이 표기되어 있다. 그녀들의 증언이 거짓이 아님을 다른 증언들이 증명하고 있다. 서로가 증언자와 증거가 됨으로써 그녀들의 경험이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임을 지시한다. “증언을 읽으면서도 사실일까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작가의 어느 인터뷰 내용을 볼 때, 색인의 목록은 아마 작가 김숨의 자기 확인 과정이었을 것이다. 상상력이 진실을 침범할까 봐, 픽션이 현실을 넘어설까 봐 조심스럽게 글을 썼던 자기 검열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기록만을 토대로 소설이 쓰였다는 점도 이러한 추측의 근거다. 물론 이 참혹한 증언이 과연 사실일까, 믿기지 않는 이 기록들이 과연 실제일까 하는 의문은 사건의 참혹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6개의 각주는 마치 이것이 사실이라고, 수많은 증언이 있지 않느냐고, 이 기록들이 그 증거라고,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듯하다. 픽션이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이 작업은 문학을 기록과 증언의 자리에 가깝게 하고 있다.
이렇듯 소설 ‘한 명’에는 문학적 장치와 사실적 기록이 양립하고 있다. 문학성과 사실성의 공존은 소설에 파괴력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문학의 처소에 대한 혼란을 드러낸다. 이후 작가는 2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제야 지식이 아니라 마음속에 위안소의 모습이 그려졌다고 말한다. 그제야 체화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올해 발표된 ‘흐르는 편지’는 시간을 거슬러 ‘나’(후유코)라는 일인칭 화자의 목소리로 낙원위안소의 참담한 현장을 복원한다.
소설은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흐르는 편지’, 7쪽)라는 편지 형식으로 시작된다. 지옥에서 태어날 아이가 죽기를 바라는 것은 ‘나’가 자기 스스로 악마가 됨으로써 고통의 대물림을 단절하려는 결단이자 고통의 표현이다. 편지는 흐르는 강물 위에 쓰이므로 현존하지 않으며, ‘나’는 글씨를 쓸 줄 모르기 때문에 편지는 문자화되지도 못한다. 문자로 쓰이지 못한 편지는 입말로 쓰이고 동시에 사라진다. 쓰이지만 쓰이지 않는다. 증언은 존재하지만 여전히 굳건한 제국의 권력이 증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반대다. 쓰이지 않았지만 쓰였고, 편지는 강물에 흘러가 버렸지만 그녀들의 신체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화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더 옳겠다.
김숨은 할머니들의 증언을 문학의 언어로 복원했다. 마치 ‘L의 운동화’를 복원하듯이. L의 운동화가 그때의 모습으로 복원되기 위해서 바닥의 패턴을 찾고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던 것처럼 위안소의 풍경은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사실성은 참담함과 고통스러움을 증폭시킨다. 반면 L의 운동화가 과거의 형태로 복원되기 위해서 현재의 과학적 지식들과 복원물질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처럼 할머니들의 증언을 온전하게 기록하기 위해 김숨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직조하고 첨가했다. 이로써 ‘흐르는 편지’는 문학이지만 문학의 문턱을 넘고 있으며, 사실이지만 사실 너머의 것을 지시하고 있다.
6.
그래서 생기는 물음이 있었다. 현실의 참혹함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아침마다 강가에서 삿쿠(일본군에 지급된 콘돔)를 씻어 말리고 소독약을 뿌려 재사용해야만 했던 그녀들의 일상을, 많게는 하루에 50여 명이 넘는 군인들을 받아내야만 했던 그녀들의 하루를, 매독을 방지하기 위해 맞아야 했던 606호 주사에 중독되어 말라가고 썩어가던 그녀들의 신체를, 죽어서도 땅에 묻히지 못해 차가운 만주의 삭풍에 썩어가던 동료 위안부의 시체를 바라보아야만 했던 그녀들의 참혹함을, 차라리 그렇게 죽어서라도 그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던 생존의 수치를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김숨의 소설들이 현장의 참혹함을 그토록 생생하게 형상화해야만 했던 이유가 이 질문에 담겨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표현 자체는 사건을 지시하지만 사건의 내부에서 자행되었던 인간 폭력의 구체성을 봉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이라는 수사는 제국 권력의 무자비함과 파시즘적 파괴성을 드러낼 수는 있지만, 벌레와도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위안부들의 삶과 죽음의 실질적 형상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상상 불가능성의 자리에 문학의 처소가 있다. 김숨은 제국, 식민, 국가, 호모-사케르 등의 용어 등을 걷어내고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위안부들의 삶과 죽음을 직접 기입했다. 증언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직조함으로써 역사적 기록의 언어가 미처 드러내지 못한 그때 그곳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간호사와 내 눈동자가 마주친다. 나는 간호사에게 눈빛으로 묻는다.
‘네 눈에는 내가 뭐로 보여?’
‘뭐로?’
간호사가 눈빛으로 되묻는다.
‘내가 사람으로 보여?’
‘네가 사람이었어?’
‘나는 아기를 가졌어.’
‘아기가 아니라 새끼겠지.’
‘새끼?’
‘짐승이 아기를 가졌다고 하는 소리는 못 들었어. 새끼를 뱄다고 하는 소리는 들었어도.’ (‘흐르는 편지’, 108쪽)
그녀들은 제국의 벌레였다. “이와 벼룩, 빈대뿐 아니라 바퀴벌레와도 함께”(‘흐르는 편지’, 41쪽) 살았다. 악순 언니는 스스로를 “개나 돼지보다 못하다”고 말한다.(‘흐르는 편지’, 106쪽)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과 위안부 생존자들 모두 죽음을 건너온 자들이지만,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은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프리모 레비의 글쓰기는 증언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가까웠다. 그러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는 자들이었다.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즉 그녀들은 언어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고통과 참혹함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러니 김숨의 글쓰기는 그녀들을 대리 보충하면서 ‘말하는 입’을 빌려주는 작업이다. 입이 막힌 자들에게 입을 빌려주고, 글로 쓰이지 않은 기억을 문학적 언어로 복원하는 일이다. 랑시에르의 어법을 빌리면 셈법에서 제외된 자들에게 자기 몫을 부여하는 문학의 정치를 보여주는 일이다.
7.
그러나 위안소에서의 참상을 온전한 언어로 재현할 방법은 없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참혹한 현실에 규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부터 말씀은 살아있는 존재의 생성과 창조에 관계했지 죽어가는 존재의 고통에 관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세월호를 앞두고 “문법 자체가 파괴”된 느낌이었다는 김애란의 진단은 ‘오래된 미래’에서 온 표현이다. “그가 겪은 모든 것을 세세히 서술하자니 그가 겪은 고통이 없어져 버린다. 오직 그의 목소리에서만 우리는 이질적이고 낯선, 그리고 악의에 찬 그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알라이다 아스만, ‘기억의 공간’, 변학수·채연숙 옮김, 그린비, 2011, 352쪽) 아스만이 인용한 루트 클뤼거의 이 문장은 아우슈비츠가 남긴 트라우마를 자세히 서술하는 것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문자가 도달하지 못한 곳, 이야기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트라우마의 핵에 가닿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살아남은 자의 ‘목소리’뿐이다. 이 때문에 문법화된 문장보다 육화된 입-말이 사건을 기억하는 언어에 가까울 수 있다. 인물의 경험에 이야기를 입히고 소설적 문장으로 구성해 낸 ‘흐르는 편지’와 ‘한 명’과는 달리 김복동 할머니(‘숭고함은~’)와 길원옥 할머니(‘군인이~’)의 증언 과정은 더 날것에 가깝다.
나 말 안 할래.
불 켜지 마. 전기 아껴. 저기 햇빛이 아직 있는데, 햇빛이 아직 좋은데 …….
나 말 안 하고 싶어.
말이 무서워.
사람은 하나도 안 무서워. 사람이 뭐가 무서워.
사람이 하는 말이 무섭지.
말 시키지 마.
입이 어디로 가버려서 하고 싶어도 못 해.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할 데가 없었어.(‘군인이~’, 12쪽)
시계는 시간이 가는 것만 알려주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시계는 몰라,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도 한다는 걸.
내 시간은 열세 살을 향해 흐르는데 시계는 백 살을 향해 흐르네.(‘군인이~’, 22쪽)
일자로 된 집이었어. 방이 여러 개였어.
나 기억 못 해.(‘군인이~’, 27쪽)
오늘은 이 세상이 싫어.
말하고 싶지 않아.
말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어.
바람처럼.(‘숭고함은~’, 150쪽)
잠복 상태의 기억은 순결하다. 한 번도 이야기된 적이 없는 기억은 해석되지 않았으며 편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트라우마는 특수한 기억이기 때문에 잠복하지만 그것이 일상화된 것일수록 서사구조나 의미 부여가 없는 이미지로 각인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할머니들은 말을 거부하기도 하며, 지금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을 넘나들기도 하며, 일관된 서사로 진술되지 않는다. 때론 시가 되고 때론 회한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구술의 내용이 구성적이고 완결성이 높다면 그 기억이 사후에 변형되었거나 어떠한 가치관에 동화되었을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아스만의 진단은 이 경우에도 옳은 말이다.
트라우마는 몸에 직접 각인된다. 따라서 그 경험을 언어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니 트라우마와 서사는 양극에 위치하며 기억 작업은 이 극단을 왕래하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기억은 망각과 짝패(double)이다.
따라서 기억이 훼손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기억의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김숨은 ‘L의 운동화’에서부터 이 질문을 지속하고 있었다. 작가는 마크 퀸의 <셀프self>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마크 퀸은 5년 동안 자신의 피를 모아 응고시킨 후 자신의 두상을 제작한다. 작품은 영하 9도로 유지되는 특수 냉동고에서만 원형이 유지된다. 훼손과 변형의 가능성이 상존했다. 그러다 그의 두 번째 <셀프self>는 청소부의 실수로 전기가 끊겨 일부가 녹아내렸지만, 이후 작품은 훼손된 상처 그대로 ‘보존’됨으로써 오히려 생명의 나약함과 유한성이라는 본래 의도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일화이다. 이때 작가 김숨의 의도는 분명하다. L의 운동화는 지금-여기의 의미를 내포한 채로 복원되는 것이지, 1987년 6월 9일의 운동화로 복구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역사의 증거인 할머니들의 신체의 나이 듦과 죽음에 임박한 존재는 현존하는 그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시가 되고 때로는 증언이 되는 할머니들의 언어가 지금-여기의 의미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또한 기억과 망각 사이의 엇갈림이 훼손된 신체를 짊어지고 70년을 견뎌온 신체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증명하는 것이다.
몸이 곧 기억이다.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것은 잔존한다. 마치 칼이 남긴 흉터처럼 고통은 몸에 상흔을 남긴다. 몸은 기억의 흔적을 갖는다. 아기집을 드러내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녀들의 신체처럼. 니체는 기억의 문자가 기록되는 표면은 마음이나 영혼이 아니라 예민하고 연약한 몸이라고 주장했다. 상처와 흉터로 새겨진 몸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트라우마는 지속성을 띤 몸의 문자다.
“지울 수 없어, 아무것으로도. 군인들이 내 몸에 새긴 흔적은, 주름으로도.”(‘군인이~’, 130쪽)
8.
장소는 기억의 거처다. 장소는 기억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증거이자 지속성을 구현한다. 이 때문에 매체는 기억을 재생산할 수 없으며 장소와 무관하게 세워지는 기념비와 추모공간은 ‘장소의 아우라’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는 그러한 장소가 없다. 광주의 오월처럼 총탄이 박힌 건물이나 해방공간이 되었던 광장도 없다. 세월호처럼 진도의 팽목항이나 ‘맹수처럼 거칠고 빠른 물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매개하고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 또한 위안부 스스로를 제외하고는 목격자가 없다. 분명히 목격되었겠으나 죽었거나 증언하지 않는다. 이런 부재의 아쉬움은 거꾸로 몇 가지의 특징을 산출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소녀 시절에 겪었던 사건은 추모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대상이 된다는 점, 현재 살아있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신체 자체가 증거가 되고 ‘기억의 장소’가 된다는 점, 그리고 이들의 기억을 증언하는 것이 문학의 처소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아우슈비츠와 달리 기억의 장소의 유무가 이후 생산되는 글쓰기의 차이를 촉발한다. 목격된 사건은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격되지 않는 사건은 기억의 장소를 재구성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김숨의 문학적 글쓰기를 통한 복원의 필요성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9.
아프리카의 열일곱 살 여자는 세 아이의 엄마다. 여자의 여동생은 학교에 다녀오는 길에 반군으로부터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여자의 친정 마을은 정부군과 반군이 수십 년째 전쟁 중이며, 마을에는 성폭행을 당한 여자들이 수십 명이다. 임신 중에 당한 여자도 있다. 겁먹은 얼굴의 한 소녀는 말한다. “나도 모르겠어요. 그들이 왜 내게 그런 짓을 했는지.”(‘한 명’, 181쪽) 2017년 5월 길원옥 할머니는 마르바 알-알리코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이라크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여성으로 IS 성노예 피해자였다. 길원옥 할머니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프지? 너 아픈 거 내가 잘 알아……. 아파도 말해야 해.”(‘군인이~’, 87쪽) 이라크의 한 소녀는 또 이렇게 물었다. “남동생 손에 칼을 들려주며 엄마를 죽이라고 한 군인도 회개하면 천사가 될 수 있는지…….”(‘군인이~’, 92쪽)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비-인간으로서의 경험은 특정 시공간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지금도 하위주체 여성들은 성을 유린당하고 아래를 찢기고 언어화가 불가능한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증언하기 위해 경유해야 하는 통로이다.
김숨은 ‘한 명’의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를 대신해 그분들이 지옥에 다녀오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한다. ‘아무’라는 부정칭의 누구라도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0만 명이 넘는다. 그중 2만 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사건은 역사의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는 238명에 불과하다. 그러니 “나도 피해자요”라고 외칠 사람이 많다. 시간은 인정머리 없이 죽음의 문턱을 수시로 앞당기지만, 아직 생존해 있다면 이름을 찾지 못한 ‘아무’의 기억이 무수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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