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사랑하는 아내는 ‘헉’과 ‘드디어’였다. ‘지금부터는’이었던 인문대 4층 ‘싸부님’의 손길은 따뜻했다. 한 선배는 ‘나도’였다. 아버지는 ‘맨날 읽어 쌌드니’라며 심드렁했으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서동댁(어머니)은 ‘그것이 뭔디?’ 그리고 ‘잘했다’였다. 이들과의 시간이 더 오래였으면…. 장모님은 ‘오메’였고, 먼저 가신 장인어른과는 한잔을 못해 아쉽다. 딸 ‘은유’와 아들 ‘환유’는 이름이 무색하게 아직 그 의미를 모른다. 나는… 내내 덤덤했으나,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린 사내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폐허가 된 곳. 한때는 은사시나무가 반짝였으나 ‘창밖을 떠도는 겨울 안개들’처럼 쓸쓸함을 익혔던 곳, 문학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곳, ‘용봉문학회’. 그러나 그곳은 나의 집이었다. 또 한 곳. 학교 정문 사선으로 꺾인 골목에 게릴라처럼 은거하던 서점 ‘청년글방’. 팔리는 책보다 주인장에게 읽히는 책이 더 많았던 곳. 비평도 아름다울 수 있다던 털보 주인장의 말을 아직 기억한다. 그의 문장은 여전하다. 죄송하고 고맙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정치철학 스터디’를 하는 이상한 친구들이 있다. 그럴듯한 모임명도 없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이들과의 시간이 소중하다. 오랜 시간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나 쓰는 사람이고도 싶었다. 강의실은 엄밀한 해석이 요청되는 유일한 문학 소통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말하기 위해 김숨의 글을 읽었다. 학생들에게 빚을 졌다.
△1976년 전남 보성 출생
△전남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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