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래요’서 열연 장미희
가수 노사연과 자선음악회에서 만나 ‘우정샷’을 찍었는데 사진을 본 40대 직장인이 “사모님이냐”고 묻는다. 농담할 분위기는 아니어서 “진짜 이 사람을 모르냐”고 되물으니 당황한다. 경위를 들으니 이해는 간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집에 TV가 없단다. 40년 동안 무대에 섰어도 그쪽에 눈길이 머물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새삼 깨달았다. 내게 익숙하다고 “어떻게 이걸 모를 수 있느냐”고 묻는 건 무지가 아니라 무례라는 것.
TV가 어떨 땐 안방극장이고 어떨 땐 바보상자인 게 맞다. 연말 시상식 땐 후자에 가까웠다. 상을 남발하는 방송사도, 상을 받고 허겁지겁 명단나열로 시간을 써버리는 수상자의 감정관리도 아쉬웠다. 그래도 3시간을 기다린 이유가 있다. 기대되는 스피치가 있어서다. “아름다운 밤입니다”로 역대급 수상소감을 남긴 연기자 장미희(사진)가 2018 KBS 연기대상에선 무슨 말을 할까. 드라마 ‘같이 살래요’로 대상이 아닌 최우수상에 그쳤지만 소신은 분명했다. “저와 그동안 저를 사랑해 주시고 지켜봐 주신 많은 분과 시청자 여러분들 사이에는 무언의 약속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라. 그 이상을 더하라.”
1970년대 말 장미희는 꿈같은 시절을 보냈다. 김 감독의 ‘겨울여자’(1977)는 ‘별들의 고향’(1974)의 흥행기록을 깬다.
영화음악의 전성기를 이끈 작곡가 겸 재즈색소폰 연주자 정성조의 음악도 좋았다.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눈물로 쓴 편지는 고칠 수가 없어요/눈물은 지우지 못하니까요/눈물로 쓴 편지는 부칠 수도 없어요/눈물은 너무나 빨리 말라버리죠/눈물로 쓴 편지는 버릴 수가 없어요/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겨울여자 주제곡·김세화 ‘눈물로 쓴 편지’). 눈물로 편지를 써본 자만이 겨울과 마주 앉을 수 있다. ‘겨울엔 우린 겨울을 모르죠/우리들의 겨울은 너무나 추운 생각뿐이죠 (중략) 겨울엔 그러나 사랑이 있죠/우리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죠’(김세화·이영식 ‘겨울 이야기’ 중).
90세 남편과 87세 아내 부부가 과일 50종과 채소 70종을 키우며 살아간다. 이들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에는 같은 내레이션이 여러 번 반복된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머문다.” 오래 살아남는 것들에는 향기가 있다. 김 감독의 출세작 중에는 ‘영자의 전성시대’(1975)도 있는데 눈물로 여러 장 편지를 써본 개그우먼 이영자는 ‘201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저를 보면서 많은 분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겨울과 맞선 청춘들을 응원했다. 그래, 이제 묵은해는 보내자. 작년을 ‘묵은’해라 써놓고 보니 마치 내 집에 묵었다가 떠난 손님 같다. 새해도 열두 달 잘 ‘묵고’ 가도록 신경 좀 써야겠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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