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34명 작품들 엮어 출간
대부분 지적·운동장애 등 지녀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 뿌듯함
초등 졸업뒤 생업 나선 朴교사
배움·봉사 등 미련에 대학입학
특수교육 전공뒤 15년간 근무
“책 읽은뒤 많은 격려해줬으면”
“아이들의 고운 생각, 꿈, 자신의 미래 모습, 첫사랑 이야기까지 담아 글로 표현해주고 싶었어요. 아이들과 눈빛, 몸짓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여러 번 헤아린 끝에 만든 문집을 보면 정말 감격스럽고 뿌듯합니다.” 박호숙(54) 대구보건학교 교사는 지난해 제자들이 쓴 작품을 엮어 ‘시가 되고 꿈이 되어’라는 문집을 출판한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말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아이들도 많았지만, 고등부 학생 34명의 글을 모은 책을 6개월 동안 만들며 제자들도 또래 아이들처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아이들임을 새삼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들이 저를 잘 따라와 준 점이 고마워 교사로서 보람도 느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다”고 했다.
박 교사가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대구보건학교엔 의사소통이 원활한 학생도 있지만, 연필을 잡고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거나 한 단어, 한 문장을 표현하기까지 5~10분 이상 걸리는 중증 중복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많다. 대부분 지적장애와 운동장애, 의사소통장애 등을 동시에 갖고 있다. 표현하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뿌듯함을 안겨주고 싶었던 그는 창비출판사가 학급 문집 출판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응모해 아이들과 문집 만들기를 시작했다.
박 교사의 경험을 듣고 있으면 평생 특수교육에 매진한 ‘베테랑’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20년 넘게 이 분야가 아닌 다른 일을 해왔다. 인터뷰에서 그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특수교육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저는 사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족들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생업에 뛰어들었어요. 한참 직장인으로 일하고 나서야 ‘특수교육’ 분야에 대해 알게 됐죠. 어릴 때 살던 곳 근처에 보육원이 있어 어려운 아이들 이야기를 건너 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어요. 실제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죠. 한동안 직장에 다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니 배움에 대한 미련이 남아 다시 검정고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어요. 갈 수 있는 학과를 고민하던 중 동생이 제가 늘 남을 돕고 싶어 했다는 걸 알고 특수교육 전공을 추천했죠. 그렇게 97학번 대학생이 됐습니다.”
박 교사는 대학 과정을 마친 뒤 발달장애 학생 학교에서 15년을 근무했다. 현재 학교에서는 3년째 장애 학생들을 지근거리에서 살피고 있다. 그가 대학에서 배운 ‘이론’과 실제 현장의 이야기는 너무 달랐다. 아이들이 보는 책 중에서도 실제 지체장애인이 본인의 이야기를 쓴 건 찾기 어려웠다. ‘비장애인’ 전공자가 저술한 서적이 대부분이라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도 있었다. 아무리 누군가를 이해한다 해도 당사자 처지가 아니면 100% 이해한다고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애 관련 서적이 많아도 대부분 이론에 따라 ‘이럴 것’이라고 추측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일반 학교에선 쉽게 가는 ‘현장학습’의 경우, 장애 학생들은 단체로 갈 수 있는 곳을 섭외하는 일 자체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턱이 조금만 높거나 경사가 있는 곳이면 전동휠체어가 뒤집힐 수도 있어요. 학교 밖에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 학생들에게 여전히 벽이 너무 높습니다. 단체로 영화를 한 번 보려 해도 휠체어 좌석인 제일 앞줄은 스크린과 너무 가까워 피해야 하죠. 학생들이 제주도에 다녀오려면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과정 중 휠체어에서 학생이 일어났다 앉는 횟수만 200회가 넘더라고요.”
이같이 많은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이들의 꿈을 알리고자 박 교사는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학년별로 다른 주제에 따른 글쓰기 모음 작업이다. 고 1학생들의 경우 ‘나의 첫사랑’이라는 주제를 정했다. 그는 “아이들도 성인이 되기까지 사춘기를 겪고 남들과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친다”면서 “무얼 적을지 난처해 하던 학생들이 한 마디만 적어 놓고도 다 같이 박장대소하며 무언가를 표현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걸 볼 때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겨울방학 이후 졸업식이 끝나고 나면 책을 엮는 작업을 시작할 생각이다.
박 교사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건 아니다. 뜻이 맞는 동료 교사도 있고, 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한 제자들이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하며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초·중·고 과정을 넘어 대학생활을 겪은 선배들의 얘기도 담아 제자들이 살면서 느낀 사회적 시선, 불편한 점,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 등을 전할 생각이다. 박 교사는 “많은 학생이 지체장애로 일상생활조차 힘들어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책을 본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최근 고 3학생 한 명이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줬다.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고 소질이 있던 학생이었는데,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하며 재미를 붙이더라고요. 그러더니 이번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중등교육과정의 경우 과목을 정해야 하는데 국어를 선택했어요. 제자가 저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점도 정말 뿌듯합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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