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준생 “계획 세울 여력도 없다”
경기 동두천시에 사는 김모(29) 씨는 새해를 맞아 3일 문신을 지우기 위해 집 근처 피부과를 찾았다. 20대 초반 불경의 한 구절을 등 전체에 빼곡히 새겼던 김 씨는 “어린 시절 방황할 때 멋으로 등에 문신을 했었다”며 “새해를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문신을 지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신 제거 수술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리는 대수술이다. 김 씨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통증도 심하지만, 새해 목표는 문신을 최대한 깨끗하게 지우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새해 다짐’의 풍속이 바뀌고 있다.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 독서 등 전통적인 다짐보다 김 씨처럼 이색적인 새해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층에선 자신이 정확하게 지킬 수 있거나 결과물이 확실한 목표를 세워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성형수술은 대표적 사례. 인터넷상엔 “새해에는 더욱 예뻐지세요!” 등의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1월엔 평소보다 20% 이상 고객이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코 수술을 위해 상담을 받은 오모(여·26) 씨는 “더 나은 외모를 가지고 싶다는 새해 다짐이 더는 조롱거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취준생들 사이에선 “어떠한 계획을 세울 여력도 없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늘었다. 새해 목표를 세우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분위기다. 동작구 노량진에서 4년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30) 씨는 “새해 다짐이랄 게 어디 있겠느냐”며 “제발 시험에 붙기를 바랄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보단 내일이 나을 것이다’라는 희망으로 새해가 되면 자신을 개발하려는 여러 목표를 세우고는 했는데, 이제는 경제 불황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이 됐다”며 “뜬구름 잡는 식의 새해 다짐보단 당장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목표에 젊은층이 집중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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