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경제학

2008년 미국이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난달 30일 포괄적이고 점진적인 TPP(CPTPP)로 발효됨으로써 교역량의 15%를 가진 세계 4대 경제블록이 탄생했다. 일본과 캐나다 등 6개국이 1차로 협정을 발효시켰고, 오는 14일에는 베트남이, 나머지 국가들도 연내에 발효시킬 것이다. 새해를 이틀 앞두고 발효시킨 것은 발효 당일 1년차 분 관세를 인하하고, 1월 1일에 2년차 자유화를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TPP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김이 새긴 했지만, 일본은 CPTPP 발효를 크게 반기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탈퇴 후 협정 발효를 주도했고, 국제적인 리더십 발휘의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는 2월 1일 일·EU 경제연대협정(EPA)이 발효되면 CPTPP와 더불어 한 달 새 세계 GDP의 34.9%와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아베 신조 정부는 CPTPP 발효로 그동안 한국에 뒤진 FTA 네트워크 격차를 줄이고, 수출 확대를 목적으로 한 ‘3번째 화살’의 효력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11개 회원국이 참여했음에도 세계 GDP의 14%에 불과하고, 20여 개 무역 규범을 유예시켰기에 당초 TPP에 비해 규범 측면에서 후퇴했다. 중소기업 우대 등 다수 규정은 상징성만 있을 뿐 의미 있는 실행계획 마련은 까마득하다. 완전 누적 혜택 역시 이론적으론 그럴듯하나 현실적인 영향을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달 30일 CPTPP 발효를 전후해 국내에서는 가입 여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13년 ‘관심’ 표명 이후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시켜 ‘TPP 정밀검토 보고서’를 만들었고, ‘TPP위원회’를 구성, 2년 넘게 검토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해 올해 중 가입 여부를 결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피해는 뚜렷한데 실익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수산 당국은 CPTPP 가입에 강력히 반대하고 제조업계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려 산업통상자원부는 몇 년째 ‘검토 중’이다.

CPTPP 가입 신중론 이면에는 국내적 요인도 있지만, 일본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 탈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국의 가입이 절실하지만, 일본 당국자는 ‘충분한 가입비’ 지불을 은근히 흘리고 있다. 1997년 국가부도 사태에서 구제금융 급전 지원의 조건으로 ‘수입선 다변화 제도’ 폐지를 요구했던 것처럼, 일본은 그동안 누적된 한·일 간 현안을 해결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더구나 한·일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일본의 우호적인 협조를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의 세계 통상 환경은 CPTPP 가입의 필요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메가 FTA가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통상 마찰로부터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충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에 우리나라는 사상 최대인 6055억 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다행히 수출이 버텨 줬지만, 올해 미·중 통상 갈등의 영향이 본격화하면 수출마저 무너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대국을 지향하는 국가가 CPTPP를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다.

조만간 CPTPP 국가들은 신규 회원국 가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수 회원국은 한국의 가입에 관심을 보인다. 국내외 여건상 가입을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만, 국제적 논의에서 소외돼선 안 된다. 세계 통상 환경과 일본의 CPTPP 전략을 분석하고, 가입에 따른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가입비를 줄이면서 실익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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