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차영환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국가채무 규모의 조작을 시도했다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예상보다 세수(稅收)가 더 많이 들어와 기재부 직원들이 김 부총리에게 8조7000억 원의 적자성 국채 발행의 취소를 건의하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최소 39.4%보다 많게 하라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김 부총리가 명시적으로 내세운 근거는 ‘정무적 판단’이었다. 충직한 기재부 담당자들이 “4조 원 규모의 국채 발행을 안 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려 하자, 청와대 비서관이 기재부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취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국채 추가 발행 시도라는 단순행위가 어떻게 국기문란 행위가 되는가? 문제는, 당시 세금이 초과 징수돼 국채를 추가로 발행해 재원을 조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 국가채무 관리 원칙과 재정 흑자 잉여금의 처리 방법은 국가재정법에 명백히 규정돼 있다. 제86조는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국가채무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국가채무 관리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또, 잉여금 처리 우선순위를 제90조에 ①‘해당 연도에 이미 발행한 국채의 금액 범위에서는 해당 연도에 예상되는 초과 조세수입을 이용하여 국채를 우선 상환하고’ ②‘교부금의 정산에 사용하고’ ③‘공적자금상환기금에 우선적으로 출연’하도록 하고, 그러고도 남는 자금은 기존의 ④‘국채 또는 차입금의 원리금’을 상환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채무를 부담하는 행위를 하는 때에는 미리 예산으로써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함에도 세수가 넘쳐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이유가 없는데도 ‘정무적 판단’에 의해 추가로 국채 발행을 시도했다면 이는 바로 국기문란 행위다. 첫째로 관계 법과 원칙을 위반했기에 범법(犯法) 행위이고, 둘째로 재정 운용이 국가 운영의 기본이기에 국기문란(國基紊亂)에 해당한다. 재정 건전성은, 국가의 세출은 차입금 이외의 세입을 재원으로 해야 한다는 기채금지의 원칙과, 회계연도에 있어서 잉여금이 있을 때에는 국채의 원리금과 차입금을 우선 상환한다는 감채의 원칙에 의해 유지된다. 김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과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이라면 이 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혀 나랏빚을 갚을 여력이 생겼는데도 예산실장까지 거친 재정 전문가인 김 부총리가 거꾸로 나랏빚을 더 늘리라는 정무적 판단을 왜 했을까? 정확한 의도는 본인만이 알 것이나, 박근혜 정부의 치적을 평가절하하고 문재인 정부의 큰 정부 정책을 호도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현 정부가 회계연도 중간에 취임했기에 전 정권의 치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을 높여 놓으면 현 정권 말에 국가채무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현 정부가 재정 운용을 건실하게 한 것으로 선전될 수 있다.
최근 일부 고위 공직자의 일탈을 접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공직자들의 법과 원칙에서 벗어나는 국기문란 행위는 사실 여부를 엄중히 밝히고 엄단해야 한다. 부총리직이 아무리 정무직이라 해도 국가재정 통계가 정무적으로 휘둘려선 안 된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의 논박은 일과성이고 정치적 공방으로 끝나기 십상인 만큼 감사원 감사를 조속히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조사를 해 국기문란 여부가 밝혀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