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음악은 규범 파괴 아닌
제도권 흡수되지 못한 소리
자연스럽게 재창조하는 작업
끝없이 반복하는 바흐 음악
재즈 특성 고스란히 드러내
바르트·들뢰즈 등 철학 통해
난해한 현대음악 역사 그려
귀에 거슬리고 난해한 현대음악의 시조로 불리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그의 피아노협주곡 42번에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조화로운 화음이나 선율은 들을 수 없다. 밀레의 그림을 보다 피카소의 그림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쇤베르크만 해도 이미 재즈와 힙합을 들어온 우리의 귀에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점묘 음악’으로 불리는 일련의 음악을 작곡한 슈토크하우젠이나 피에르 불레즈 등 그 이후 현대음악가들로 가면 피카소에서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사람을 그린 프랜시스 베이컨쯤으로 더욱 멀어진다. 책의 서문에도 나오지만, ‘음악에 도래한 추상화의 시대’인 것이다.
아무 규칙도 없이 배열된, 이해 불가능하고 때로 듣기에 고통스럽기까지 한 현대음악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적지 않은 이가 가졌다. 칸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예술과 문화로 관심을 옮겨 특히 현대음악에 관해 음악대학원과 음악원에서 강의하는 철학자 박영욱 숙명여대 교양학부 교수가 현대철학과 관련지어 이런 의문을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가 우려하듯, 음악이야 무엇이든 감상할 수 있으나 음악을 분석하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진입장벽이 높다. 하지만 적어도 현대음악가의 음악적 사유를 이해하는 눈과 귀를 열리게 해주는 국내 저자의 보기 드문 책이다.
쇤베르크 음악의 혁명성을 주장하며 현대음악의 대변인이 됐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상호 분리된 전문영역으로 내쳐져 있던 음악과 역사를 접합하는 시도를 했다. 인간의 역사나 음악의 역사는 따로 굴러온 게 아니라는 것인데, 현실의 참모습, 곧 진리에 다가서려는 철학도 떨어져 있지 않다. ‘바흐에서 현대음악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 따르면, 20세기 이전 음악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음(音)’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시작됐고, 단지 좋은 소리나 화음에 천착한 것이 아니라 소음까지 포함해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우선 현대음악을 전통적인 규범이나 형식, 질서를 파괴하려 했던 아방가르드 정도로 속단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태도를 ‘아방가르드 소아병’이라 비판한다. “현대음악가는 근본적으로 창조자로서의 음악가”이며, 기존의 규범을 거부하는 것은 “무엇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또 역시 사회학적 시각으로 현대음악이 관심을 갖는 소음을 한 제도권에 흡수되지 못한 주변의 소리, 무의미한 소리로 보면서 제도가 지닌 한계를 대변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현대음악에선 음과 소음의 구분이야말로 무의미하며, 하나의 카테고리로 통합될 뿐이다.
저자가 고전 중의 고전인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현대음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바로 현대음악의 특징과 연관돼 있다. 저자는 바흐의 음악이 지닌 특별함을 종교적 찬양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음악 자체를 신과 동일시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바흐의 음악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아무것도 전개되지 않는 마치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무한한 방향성을 지닌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 즉 무중력 상태야말로 신의 세계다. 바흐 음악이 지닌 무중력은 그의 음악이 하나의 정해진 경로나 서사를 따르지 않는 데서 드러나며, 현대음악가나 재즈음악가들이 유독 바흐의 음악에 대해 친화성을 느끼는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음악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음악 자체다. 그것을 사회학적 언어나 문학의 언어로 푸는 것은 난센스다. 이 점에서 쇤베르크야말로 음악을 자율적인 체계의 소통영역으로 이해하고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간주한 최초의 음악가였다. 저자는 화음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조성 자체를 없애고 ‘무조음악’을 추구한 쇤베르크의 탐구과정을 전통과 관습 등 모든 질서에 대해 ‘판단중지’하고 풍부하고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고자 했던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과 연결짓는다. 하지만 루만의 ‘체계이론’ 등 현대철학이 찾았듯, 음악에서도 완전한 음악적 소통이나 이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쇤베르크의 음악의 진보성이 한계를 만난다고 저자는 본다. 현대음악은 오히려 그 너머에서 두렵고 감당할 수 없는, 지성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탈로서의 희열을 추구한다.
이처럼 책은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 영도’, 들뢰즈의 ‘내재성의 평면’이나 ‘기관 없는 신체’, 프루스트의 ‘지속의 단절’ 등 현대철학의 개념을 끌어다 현대음악을 설명한다. 음악은 철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저자의 말 중에서 현대음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라캉식으로 말해 ‘상징’이라는 우리의 관습적 개념들에 균열을 내 그 틈새로 ‘실재’를 언뜻이라도 만나 ‘주이상스’를 맛보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72쪽, 1만8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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