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고 지고, 사랑이 트고 지고, 돌고 또 돌아 쉼 없이 달려왔더니 어제의 그 자리였다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꽃이 피고 지고, 사랑이 트고 지고, 돌고 또 돌아 쉼 없이 달려왔더니 어제의 그 자리였다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얼마 전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커피와 골프 관련 실험 결과 골프 라운드 전 커피 한 잔은 에너지 향상과 자신감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세 명의 골퍼 A, B, C(핸디캡 4, 6, 20)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 때와 에스프레소 2샷, 4샷, 6샷을 마신 후 드라이버샷 거리와 아이언샷 정확성, 짧은 퍼트 성공률을 테스트했다. 이 결과에 대해 아라 수피아 박사는 “라운드 전 커피 한 잔은 에너지를 올려주고 느낌과 자신감을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페인에 있는 테오브로민은 혈관을 넓혀 산소를 증가시키며 테오필린은 기도를 열어 산소 소비를 늘려준다”고 덧붙였다.

아마도 한국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미국, 노르웨이, 핀란드, 룩셈부르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11조 원에 달하며 국민 전체가 1년간 265억 잔, 1인당 512잔을 마신다.

국내 골프장 한 곳에서 하루 평균 150잔 정도가 팔린다. 이를 550개 골프장으로 계산하면 8만2500잔, 무려 5억여 원에 이른다. 특히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엔 ‘호호’ 불어가면서 필드에서 마시는 커피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없다. 여기에 놀라운 집중력과 비거리까지 늘려준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으니 커피 애호가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 많이 마시면 오히려 골프를 망친다는 점도 기억하자.

만화가 허영만 씨는 “한 잔의 커피로 완벽해지는 순간이 있고, 커피에는 위로가 녹아 있다”고 극찬했다. 그는 또 “한 잔의 커피에 담긴 위로의 양은 평등하지만 그걸 마시는 사람들의 상처는 절대 똑같지 않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커피 3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은 “난 언제나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는 걸 잊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음악의 거장 바흐는 커피를 사랑해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도 남겼다. 그는 1000번의 키스보다 커피가 더 좋다고 역설했다. 베토벤은 항상 커피콩 60알을 사용해 커피를 마셨고, 손님이 와도 60알씩을 세어 드립커피를 만들었다.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우월감과 우아함을 입혀 자신에게 딱 맞는 향기를 마신 것이다.

알싸한 찬바람과 깔끔한 겨울 골프장에서 마시는 커피 향과 맛은 그 어떤 공간에서 마시는 것보다도 더 진하고 향기롭다. 아마도 골프장에서 커피가 많이 팔리는 이유일 것이다.

올해는 골프장에 가면 맹목적,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문화와 철학과 깊이를 음미하며 마셨으면 한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타고 오는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