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강압적 정책 지시 의혹에
관가‘터질게 터졌다’지배적
‘행정부소외 극복’자성 목소리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와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세종 관가에서 ‘행정부 소외론’을 극복하고, 청와대의 비공식적인 강압과 지시에서 벗어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여 동안 청와대가 행정부 정책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모든 일을 직접 챙김)식 국정운영에 대한 반발이다.

4일 경제부처 A 사무관은 “정권 초 ‘김동연 전 부총리 패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청와대가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정권 교체 전후 단골로 나오는 ‘영혼 없는 공무원’ 문제의 본질을 이번 기회에 국민이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신 전 사무관도 수차례의 동영상에서 “대통령과 장관 간 소통이 적고 청와대 참모에게 힘이 실리는 구조에서는 ‘행정부 소외’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행정부 업무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바 있다.

세종 관가에서는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 의혹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재부 B 사무관은 “선배 공무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을 신 전 사무관이 용기 있게 했다”며 “젊은 공무원이 이렇게 터뜨려줘야 관행이 바뀌고 고인 물이 그나마 좀 맑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C 사무관 역시 “공무원들이 언제까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야 하느냐”며 “KT&G 문건은 공식적으로 생산된 대외비 문건이 아닌데 검찰 고발은 젊은 사무관들 입에 재갈 물리기 아니냐”고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반면 경제부처 한 고위 관계자는 “신 전 사무관의 행동이 아직 연차가 어려 사안을 두루 살피지 못하고 과장한 측면이 크다”며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는 투철한 공명의식을 가지고 젊고 처자식 없는 사무관들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지난 정권의 비위와 부정을 폭로하던 양심선언과는 다른 이례적 사건”이라며 “이번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직권남용죄’로 인한 부메랑으로 공직사회에 제2, 제3의 내부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법원은 물론 검찰에서도 직권남용죄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공직사회의 혼란에 제동을 걸 수 없다”며 “공무원이 업무처리마다 유권해석을 의뢰할 수도 없으니 나중에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신 전 사무관처럼 폭로나 비망록 작성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민철 기자 mindo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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