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거목장(綱擧目張)’. 1450년 음력 2월, 세종이 사망했을 때 신하들이 한마디로 요약한 세종 정치의 비결이다. 국왕이 그물의 벼리(綱)를 들어 올리면 그물눈(目)이 저절로 펴졌다는 뜻이다. 중요 부분만 움직이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이 말은 모든 조직 운영자의 꿈이다. ‘그물의 벼리와 그물눈’의 비유는 ‘서경(書經)’에서 유래해 전통시대 지식인들이 애용하던 것으로, 통치술에 관심 많았던 한비자(韓非子)의 저술에서도 보인다. 예컨대 한비자는 “현명한 군주라면 관리를 움직이지 백성들을 다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이 났을 경우 휘하 관리에게 빨리 물동이 들고 달려가라고 하는 ‘일인지용(一人之用)’은 낮은 단계의 인재 쓰기이다. 그보다는 그에게 권한을 주어 많은 사람을 움직여 불을 끄게 해야 한다. 이른바 ‘조편사인(操鞭使人)’의 위임경영을 할 때 벼리 장악 능력이 높아진다.
그러면 어떻게 벼리 장악 능력을 높일 수 있을까? 세종이 ‘여러 가지 일을 종합해서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한 가지 원칙으로 만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세종실록에 기록된 그 비법의 하나는 임현사능(任賢使能) 이후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인재 쓰기이다. 세종은 임현사능, 즉 기획할 수 있는 안목과 관리능력을 가진 어진(賢) 인재에게 위임하고, 맡겨진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내는 유능한(能) 인재를 부리는 데 뛰어났다. 가령 국방 분야의 경우, 정흠지·김종서·이천 등 어진 인재에게는 지휘권과 인사권을 통째로 위임했다. 이에 비해 최윤덕·김윤수·장영실 등 유능한 인재에게는 구체적인 임무를 배당해 일을 성취하게 했다.
세종 정치의 두 번째 비법은 사필사고(事必師古)를 거쳐 제도를 밝게 정비하는(制度明備) 조직운영이다. 세종은 어떤 일을 할 때 반드시 ‘옛사람들이 성공하고 실패한 것을 거울삼고, 오늘날의 이롭고 해로운 점을 참작하게’ 했다. 그는 당시 논의되는 거의 모든 문제가 과거에 이미 논의되었으며, 추구하는 해결책까지 역사 속에 다 제시되어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세종실록에는 ‘계고(稽古)’ 즉 ‘옛일을 상고(詳考)하라’는 말이 빈번히 나오는데 세종은 제안된 정책의 시행조건이나 진법(陣法)의 유형, 그리고 인재 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사례를 뽑아 검토하게 했다.
과거의 사례를 집대성하여 그것으로부터 성공한 조건과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려는 세종의 노력은 집현전이라는 싱크탱크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록에 숱하게 나오는 ‘집현전에 명하여 옛 사례를 아뢰게 하라’는 지시가 그것이다. 요약해보면, 유능한 사람을 골라내서 잘 부릴 수 있는 뛰어난(賢) 인재를 조직의 벼리에 해당하는 곳(nexus)에 배치하되, 그들로 하여금 선진적인 제도 안에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 것이 세종의 국가경영 비결이었다고 하겠다. 세종 재위 중반이 되면 ‘뛰어난 행정능력 소유자들과 무예 탁월자들이 모두 제자리에 나아가 일하고 싶어 했으며, 국왕이 비록 정무를 보지 않으셨으나 별로 적체된 일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강거목장의 효과라고 판단된다.
문제는 조직의 벼리에 해당하는 곳이 어디며, 그 자리에 누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지도자의 안목과 능력이다. 세종은 도대체 그러한 안목과 능력을 어디에서 터득했을까? 실록에 기록된 세종의 용인술과 역사 배우는 방법에 더욱 관심이 가는 요즘이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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