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명·김의규 부부 작가의 미니픽션 - (17) 거룩한 독서
내 심정 대변하는 요나의 구절
모르고 살아온 쌍둥이 형제와
만나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느님 명을 어기고 도망가고
희생 제물로 자기를 던지라니
이런 쾌남이 있는가!
자신이 못 본단 사실을 잊고
볼것이 안보임을 알아챈 그에게
낯선 視界가 열리고 있었다
오늘도 폴은 카페 움브레 아니매에서 책을 읽고 있다. 라틴어로 ‘영혼의 그늘’을 뜻하는 공간에서 그가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애견 벤은 카페 밖 가로수 그늘에 앉아 스쳐 가는 세상의 호흡을 읽는다. 환속한 프란치스코회 신부가 십여 년 전 차린 이 카페는 에스프레소 수준으로 진한 아메리카노가 유명하다. 커피 인심이 넉넉하여 리필도 해주는데 폴은 이미 그 두 잔을 다 마셔버려 웨이터가 잔을 거둬갔다. 커피 한 잔 주문에 세 시간째 2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에게 자리를 내어 달란 요구 따윈 하지 않는다. 그가 책을 읽고 있는 방식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허락되는 편의를 잘 알고 있기에 거의 매일 한 차례씩 그 카페를 이용한다. 카페는 북향집이어서 낮에도 어두워 테이블마다 갓등을 켜두는데 그는 대체로 가게 안쪽 모퉁이의, 작은 쪽창이 나 있어 밖에 있는 자신의 애견이 주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폴이 요 며칠 새 읽고 있는 책은 지난 주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연대기별 구약성서’ 시리즈의 제12권이다. 이 책은 오바드야, 요나, 미카 등 고대 이스라엘의 세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구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났지만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 성서라면 단연, 간결하지만 다양한 현대적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신약이 에센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구약은 그저 창세기와 시편 정도를 훑어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기에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성당에서 미사전례 중에 독서자가 읽은 구약의 한 구절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요나서의 구절이라 했는데 당시 자신의 심정을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러고도 수많은 불면의 밤이 흐른 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중 도서관의 최근 구입 도서 목록에서 그 책을 발견했는데 그는 마치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모르고 살아온 쌍둥이 형제와 만나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읽은 오바드야서는 유대 민족의 신탁에 대한 예언이 주된 내용으로 그로서는 별로 와 닿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요나서는 첫 장, 첫 절부터 달랐다. 하느님이 요나에게 니네베성의 백성들을 찾아가 그들의 죄악을 일깨우라고 명했을 때 그가 하느님을 피해 달아나려고 먼 곳으로 가는 배에 잠입하는 대목이 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무슨 배짱으로 감히 하느님 명을 어기고 도망갈 생각을 한단 말인가! 폴은 일단 요나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랬다가 큰 풍랑이 일어 배가 난파될 지경에 이르자 요나는 배에 함께 탄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게 하느님을 피해 달아난 자기 탓이라며 희생 제물로 자기를 바다에 집어 던지라고 했다. 이런 쾌남이 있는가! 폴은 자신도 모르게 하하 웃으며 무릎을 쳤다. 카운터에서 단골손님을 지그시 바라보던 카페 주인이 레몬수 한 잔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오늘은 뭘 읽고 있소? 퍽이나 재밌나 보오.” 폴이 책을 들어 보이다 말고, “나 참 아직도 이런다니까…” 하며 머쓱한 표정을 지은 뒤 대꾸했다. “요나 이야기요… 구약성서에 나오는.” 전직 성직자는 “오, 슈퍼스타 예수의 마이웨이를 수백 년 앞서 예언한 마스터 요나 얘기, 흥미진진하죠!” 하며 폴의 어깨를 툭 치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성질을 부린 후 사막으로 가서 초막을 짓고 아주까리 그늘에서 간신히 더위를 피하며 살던 요나에게 하느님은 벌레를 투입하여 아주까리를 시들게 만들고 뜨거운 동풍을 보낸다. 그러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다시 울부짖는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폴은 요나의 항의에 격하게 공감하느라 목이 탄 나머지 레몬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피날레로 하느님의 타이름이 이어지지만 그는 그 대목을 좀 쉬었다 읽기로 하고 창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로수 그늘 아래 있어야 할 벤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지팡이를 챙기는 것도 잊은 채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나갔다. 벤! 베-엔! 아주까리를 잃은 요나의 부르짖음이 ‘영혼의 그늘’ 밖으로 울려 퍼지며 눈부신 캘리포니아 햇살 속에 흩어졌다.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을 잊고 보여야 할 것이 안 보임을 알아챈 그에게 낯선 시계(視界)가 열리고 있었다.
구자명 소설가·한국미니픽션작가회 창립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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