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 사회부 부장

33년 전 사립고교가 4개 있었던 지방 A 도시. 교사로 채용되려면 600만 원을 재단 측에 ‘기부’해야 한다는 은밀한 말이 돌았다. 그보다 인구가 3배가량으로 많았던 B 도시의 사립고는 1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학교 측과 접촉했던 교사 지망생과 가족들이 전한 ‘팩트’다.(한 해 후인 1987년 사립대 등록금이 70만 원대 초반이었다)

세월이 오래 흐른 지금 이런 채용 뒷돈 비리는 개선됐을까. 최근 만난 모 교육청 감사담당자는 “감사를 해도 채용비리의 수법이 더 교묘해지고 다양해져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들은 채용비리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채용이 결정되고 나면 재단 관계자가 ‘출연’을 요청한다. 당장 그런 큰돈이 없다고 하면 대출을 알선해 돈을 건네받은 후 계좌는 폐기한다. 신규 교사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폭로하지 않는 이상 거래는 함구되고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대학은 어떨까. 해외 유명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시간강사 C 씨는 한 대학으로부터 전임교원 채용 제의를 받았다가 거절했다. 학교 관계자가 캠퍼스를 둘러보게 하더니 “나무 조경을 해야 한다”며 억대의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후 13년간 꾸준히 공부해 학사·석사·박사까지 마친 모 사단법인의 임원 D 씨에게 “왜 대학 강단에 서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대학마다 돈을 달라고 해 포기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근자에는 국정감사에서도 유사한 문제점이 불거졌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의 대전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이찬열(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다. 감사원이 점검한 대전 지역 모 재단은 고교 정규교사를 채용하면서 공고문에는 1차 시험을 필기와 논술로 한다고 명시하고 실제 평가는 필기와 서면심사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 교장의 딸이 서면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최종 합격했다. 다른 학교법인 한 곳은 초등학교 정규교사를 뽑으면서 이미 근무하고 있던 3명의 기간제 교사를 근무 기간에 우수평가를 받았다며 공개전형 절차 없이 정규교사로 전환했다. 무슨 흑막이 있었는지 당연히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앞서 시·도 교육청이 2015∼2018년 기간에 1만392개 초·중·고를 감사했더니 기간제 교사, 사립학교 교원 채용 절차와 관련된 지적사항이 981건 나왔다.

교육부는 올해 첫 번째 중점업무로 ‘교육분야 부정·비리 대응’을 내세웠다. 교육부와 사립학교 간 유착 가능성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고 했다. 채용비리는 학령인구와 교원 수 감소로 한층 더 교직 문턱이 높아진 현실과 대학 재정의 전반적인 악화 기조 속에 음습한 모습으로 기승을 부릴 개연성이 크다. 사회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킨 시중은행과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도 문제지만, 교육분야의 비리 역시 전반적인 신뢰를 실추시켜 전인적 교육의 추진체인 학교와 국가, 인재의 장래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중차대한 해결 과제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9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교육계도 신년 새 출발을 위한 모임을 했다. 교육현장의 폐단을 뿌리째 뽑지 않고는 사회 불평등, 불공정 개선이 요원하다는 점을 새해 재차 다짐하고 복기(復棋)했으면 싶다.

horizon@
이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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